오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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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임진각으로 이어진 도로옆에는 반쯤 걷어 올린 비닐하우스 속에서 싱싱한 오이·토마토·수박등이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저수지에 도착하자 아빠는 정성껏 미끼를 끼워 낚시를 던졌으나 한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채 아이들에게 실망만 안겨주고 돌아오는데 조그마한 냇물에서 아이들의 물장구가 한창이었다.
아이들에게 발이라도 적시게 할양으로 다리밑으로 내려가 보니 몇몇가족이 자리를 깔고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때 얼굴이 검게 그을린 아저씨 한분이『이 다리밑은 복중에 와도 서늘하답니다. 매운탕 끓여 잡수시겠어요? 내가 이 족대로 금방 잡아 드릴테니까』하며 족대를 들어 보이더니 물속으로 쏙 집어넣었다.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팔딱 팔딱 뛰는 피라미 몇마리가 족대의 그물위에 올라오자 아이들은 『와-』소리치며 서로 갖겠다고 법석을 떨자 그 아저씨는 어디선가 비닐 봉지를 가져오시더니 냇물을 가득 담고 방금 잡은 피라미를 넣어 주셨다.
그 아저씨는 또 빨갛게 고추장을 풀어 피라미를 넣고 끓이다가 라면을 넣은 매운탕을 한그릇 듬뿍 담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순간 나는 덜컥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친절하다가 갑자기 무리한 요구라도 하여 모처럼 즐거운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잔뜩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그 아저씨는 우리에게 아무런 요구나 불편한 말을 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때 오이를 썰어 고추장을 찍어 먹으며 순박한 시골 아저씨의 고마운 마음을 잠시나마 오해했던 경솔한 내 행동을 깊이 후회했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 489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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