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새 탄광 347개서 7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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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이 때문에 국내 석탄은 대부분 민생 연료인 연탄으로 만들어져 사용됐다. 석유가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무연탄은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석탄협회에 따르면 연관 산업의 부가가치 창출액까지 합쳐 석탄광업이 그동안 500억 달러의 외화 절약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태백석탄박물관에 따르면 국내에서 연탄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대한제국 시대로 기록돼 있다. 한 일본인이 평양에 연탄공장을 세워 주변 일대에 보급했다. 이후 일본인들이 전국 곳곳에 연탄공장을 세웠다. 민족자본으로 최초의 연탄 제조업체는 1947년 설립된 대성산업이다.

60년대는 국내 연탄산업의 전성기였다. 63년 말 연탄공장은 군소 규모를 합쳐 모두 400여 개에 달했다. 이후 업체 간 지나친 경쟁으로 64년 말 200여 개, 65년 130여 개로 줄어들었다. 군소 연탄공장들은 대부분 당시 최대의 연탄생산업체였던 강원산업(삼표연탄)의 대리점으로 바뀌었다. 삼표는 연탄을 찍어내는 생산설비를 54대나 보유, 서울시 연탄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2위인 대성연탄(현 대성그룹)이 10대, 3위인 삼천리연탄(현 삼천리)과 대경이 각각 8대를 가지고 있었다. 연탄 생산업체는 줄어들어도 절대소비량은 80년대까지 계속 늘어났다. 연탄 소비가 절정을 이뤘던 해는 88년. 당시 전국적으로 2429만5000t의 석탄을 생산해 전량 연탄 제조에 사용했다.

하지만 연탄산업의 사양화는 일찍 시작됐다. 66년 겨울 극심한 연탄파동이 발생하자 정부는 우리나라 에너지 구조의 무게중심을 연탄에서 석유로 옮기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69년엔 석유가 전체 에너지의 37.4%를 차지해 처음으로 석탄(32.6%)을 추월했다. 당시 국제원유가가 배럴당 2달러에도 못 미칠 만큼 저렴했기 때문이다.

석탄 소비는 특히 80년대 후반 도시가스 같은 청정연료가 보급되면서 급격히 줄어들었다. 90년대 초부터는 탄광을 닫으면 지원금을 주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석탄산업도 본격적인 사양의 길을 걸었다. 89년 347개에 이르던 탄광은 대부분 폐광되고 현재 7개밖에 남지 않았다. 민간 탄광은 4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석탄공사가 운영하고 있다. 연탄 생산업체도 전국적으로 50개만 남아 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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