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ㆍ민한의 당리적 합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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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일밤 마침내 타결된 국회의원선거법 협상결과는 지금까지의 선거법협상이 늘 그래왔듯이「원칙」 보다는 민정· 민한 2개당의 「당리적 합작」의 산물이라는 인상이 짙다.
당초 선거법협상의 개정방향으로 여야가 합의한 공정선거보강조치마련에는 상당한 진전이이뤄진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유신잔재의 청산이라는 명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역간의 극심한 인구불균형과 위헌이라고까지 지적했던 전국구의원배분방식은 현행제도의 유지 속에 그대로 남게됐다.
비록 3당대표와 사무총장들이 『계속 절충해서 정기국회에 합의처리키로』했지만 지금과 같이 선거구문제에서 3당이 한보도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의견대립을 해소할 묘안을 발견하기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그것은 선거구의 불개정합의와 다를 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1구2인제의 현행제도유지를 바라는 민한당과 1구3인제에 제3당의 존립을 걸어보았던 국민당사이에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입장을 보이던 민정당은 막판에 가서 결국 민한당쪽에 섬으로써 국민당은 소수의 비애를 씹게됐다.
지난 5월22일 협상이 시작된 후 야당측이 맨먼저 들고 나온 것이 선거구의 극심한 인구불균형 문제였다.
야당측은 헌법77조를 들어 인구불균형이 투표가치의 등가성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 이의시정을 요구하면서 민한당은 50만명이상 선거구의 증·분구를 국민당은 인구비례에 따라 3,4인도 뽑는 1구다인제를 주장했었다.
이와 함께 야당측은 제1당이 무조건 3분의2를 가져가게 돼있는 전국구배분방식이 헌법에 규정된 비례의 개법에 위배된다고 문재를 제기했었다.
민정당측이 이에 대한 대응카드로 사무총장회담에서 제시한 것이 1구1∼3인제였다.
1구2인제를 내심 바라는 민한당과 1구3인제를 기어이 실현해 보려는 국민당의 의견이 절대 합치될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하고 그 허를 찌르는 역공수였다고 봐야할 것이다.
결국 선거구제에 대한 당론조차 정하지 않았던 민한당은 증·분구요구마저 후퇴시키고「선공명보강, 후선거구논의」라는 어정쩡한 주장만 내세웠다. 국민당은 역시 3인선거구를 몇개 얻어볼까 하고 매달리다가 당초의 자기논리를 스스로 무너뜨린 결과가 됐다.
야당측이 선거구조정문제에서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를 밀고 나가지 못한 것은 민한당측이 나눠먹기식 1구2인제에 집착한 때문이라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것같다.『공명보강조치없이는 어떤 선거구제를 도입해도 소용없다』는 주장은 과거의 선거사를 되돌아볼 때 일리가 없는 바는 아니지만 공명선거가 법조문 몇 개로 보강되고 안되고하는 문제는 아니다. 민한당이 이번에 최소한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는 선거구제에 대한 명백한 당론만은 제시했어야 했을 것이다. 특히 지역구문제에서 얽히는 바람에 야당측은 전국구배분문제는 제대로 문제제기 조차 하지 못한 감이 없지 않다.
야당측의 이같은 약점을 잡아 전국구배분방식변경 등 야당요구의 봉쇄만을 노린 민정당측의 작전 역시 떳떳했다는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기존정치질서의 유지와 총선전략의 틈바구니에서 민정당으로서는 정당질서를 흐트러 뜨릴 수도 있는 선거구제 문제에서 모험보다는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풀이된다.
공명선거의 제도적 장치는 어느정도 개선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당추천선관위원이 개표구선관위까지 참여할 수 있게된 것은 야당으로서는 큰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투·개표참관인의 증원과 수시교체, 그리고 참관인의 기능을 확대시키기로 한 것도 야당측이 꼽을 수 있는 수확이다.
그밖에 합동연설횟수를 일부 늘리고 현수막·선전벽보 등이 조금씩 늘어나게 됐지만 선거구나 전국구 문제에 비하면 비약적인 사항이다.
민한당측이 주장한 정당추천선관위원에 의한 투표용지 가인·선거인명부사본교부 등은 행정절차상 번거롭다는 이유 하나로 거부됐다.
또 민한당이 요구한 선거기간 중 공무원의 출장금지, 국민당이 주장한 공무원선거간 여죄 등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하자는 주장도 전혀 반영되지 못했으며 이·통·반장, 소대장급이상 예비군간부와 정부투자기관 임직원의 정당가입금지를 규정했던 정당법개정안은 제대로 토의되어 보지도 못한 채 묻혔다.
피선거권 제한완화 문제는 실무대표 회담에서는 의견접근을 보는 듯 했으나 사무총장 회담에서는 진지하게 거론된 흔적이 없어 협상이 당략과 현역중심으로 진행됐다는 한예가 된 셈이다.
야당측이 은근히 바랐던 정당탈당자의 타정당 및 무소속입후보금지와 무소속후보자의 출마요건강화문제는 당내 해금입당자들의 동요와 3차해금읕 고려한 민한당측이 반대입장을 명백히 함으로써 별다른 문제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 전국구의원의 기탁금제를 신설함으로써 전국구후보 남발에는 다소 규제가 가해진 셈이다.
결국 선거관리측면의 이같은 몇가지 개정조치가 이번 협상이 .이룩한 개선이라면 개선이다. 각당이 이제 선거법보다는 선거전에 눈을 돌려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어 더이상 법개정협상이 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문제제기로 끝나버린 전국구배분방식 등 선거법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과 재편은 정기국회에나 기대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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