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유주에게 돌려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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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투서」사건의 여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른바 「대지」공사의 토지투기사건에 접하는 국민들의 심경은 여간 착잡하지 않다.
도시계획에 관련된 용역을 맡은 회사가 그 업무와 관련된 기밀을 이용, 투기행위를 한 것은 어디로 보나 묵과할 수 없는 행위다.
정부가 등록취소 등 회사 및 그 대표에 대한 응징과 함께 수습을 서두르는 것은 사건의 확대로 생길 심각한 파문을 우려한 때문일 것이다.
대지공사사건이 표면화하자 정씨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재산의 사회환원」이 수습방안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문제된 당을 서귀포시가매입 당시의 값으로 사들여 공개경보에 부친다는 것이다.
정씨사건이 났을 때 우리는 말썽이 된 「재산의 사회환원」이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과연 타당한 것이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바 있었다.
국민 감정의 매원에선 혹시 그럴듯해 보이는 방안일지 모르나 본원적으로 「사소유권의 보장」이란 자본주의의 원칙에서 생각하면 나쁜 선례의 반복일 뿐이다.
가산적몰 등 국가가 공권력을 행사하여 개인의 재산을 몰수하는 행위는 절대군주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다.
가렴 역모를 했을 경우 왕의 명의로 재산과 노비 등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 바로 그 예다.
그러나 근대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의 사유재산권은 국민의 기본권으로 철저히 보강하고 있으며 우리헌법도 제22조에서 이점울 명시하고 있다.
국가가 도로를 낸다거나 불가피한 공공의 필요에 의해 사유재산에 손을 댈 경우에도 관계법령에 따라 집행하되 싯가 매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국가가 국민의 재산을 무상으로 취득하는 경우는 범죄에 사용된 흉기를 몰수하거나 세금·벌금·범칙금징수 외에는 어떠한 명목으로도 예외를 두지 않고 있다.
한편 국가의 공권력 개입 없이 개인이 자진해서 이뤄지는 「순수한 의미의 헌납」은 현행법상 허용되고 있으며 오히려 장려되어야할 미덕이다. 이럴 경우 헌납자의 헌납경위와 취지, 목적 등이 분명해야하고 『나의 재산을 무슨 사업에 써달라』는 본인의의사가 뚜렷해야함은 물론이다.
이처럼 서명한 의사 없이 무조건「사회환원」이라는 모호한 뜻만으로는 그것이 순수한 의미의 헌납행위인지, 아니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타의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인지 분명치 않다.
동기가 분명치 않거나 모호한 근거에 의해 내놓는 재산은 그것이 아무리 많고 좋은 목적에 쓰인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거나 더욱이 권장할 일이 못된다.
재산의 사회환원이 장려될 미덕이라면 환원의 동기나 뜻 또한 숭고해야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는 지금 우리사회의 「뿌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한낱 감정에 사로잡힐 것인가, 중대한 선택의 국면에 있다.
대지공사의 경우 당 매입과정이 법적으로든 도의적으로든 떳떳치 못하다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다. 용역을 맡은 회사가 기밀을 이용, 이익을 취한 것이 기술용역육성법을 어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당을 사들이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매입한 당의 소유권 포기는 사회정의란 측면에서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정직씨의 토지를 사회환원이란 이름 밑에 정부가 인수한다는 것 또한 「최선」의 수습방안이 될 수 없다.
가장 합당한 해결책은 이씨가 포기한 땅을 원상회복 시키는 일이다. 이 경우 원상 회복은 전소유주들에게 돌려주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해결방식은 사유권을 신성시하는 자본주의의 원칙에도 충실하면서 주민들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가장 세득력 있는 방안일 것이다.
현지 주민들은 그 땀이 개발의 중심이 될 것이란 사실을 모르고 팔았다면서 『이씨가 땅을 내놓으면 재매입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당초 평부 9백원 안팎에 팔렸던 문제된 당은 지금 2천원으로 올랐고 개발공사가 착수되면 그 값은 훨씬 뛸 것이 틀림없다.
사전에 전소유주들이 이런 정보를 알았으면 안팔았을 것이고 특히 매입과정에 감언이설이나 회유·협박까지 동원되었다면 원소유자들은 피해자로 보아야 한다.
혹 전소유주에게 다시 팔면 그에게 큰 이익이 돌아간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팔지 않았으면 더 큰 이익이 있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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