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옴부즈맨칼럼

황우석 관련보도 널뛰기 ‘비판적 감시’ 역할 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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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그리고 이제 정신을 차리고 돌이켜보니 마치 흥미진진한 영화가 결국엔 남는 것이 없듯이 한 달 동안의 신문 읽기 끝에 무엇이 진실이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고 심지어 무언가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그러한 생각의 끝에서 과연 그동안의 중앙일보가 진실 추구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과 비판적 감시자라는 역할에 충실했는지를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황우석 박사와 관련된 보도는 물론 일반 기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분야, 그것도 첨단 생명공학기술에 관한 것이어서 언론이 섣불리 비판과 검증을 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고도의 전문 분야라는 이유만으로 끈질긴 추적과 취재를 통한 진실 추구를 포기하고 녹음기를 틀 듯 당사자들의 폭로와 주장을 그대로 전달만 하는 것은 스스로 언론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신문사별로 각 분야의 전문기자를 두고 있고, 또 조금만 발품을 판다면 외부 전문가들의 협력을 받아 검증이 가능했던 상황하에서 전문성이 부족했었다는 변명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오히려 기자들의 전문성보다는 진실에 접근하려는 기자들의 전문가다움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언론은 단순한 중계방송이 아니다. 특히 방송과는 달리 심층보도가 가능한 신문이 검증을 포기하고 취재 대상의 입만 바라보며 발표되는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존재 이유를 저버리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 과격하고 정제되지 않은 네티즌들의 반응을 여과 없이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보도해 온 것도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사회 각 계층의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해 얻어낸 여론이 아니라, 인터넷에 접근이 가능하고 한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진 네티즌들의 의견이 우리 사회를 대변할 수는 없다. 사회적 성역에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거나 국익을 위해서는 진실 추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네티즌들의 비정상적인 언론관 및 언론매체에 대한 비이성적인 폭력의 행사에 대해 침묵했음이 실망스럽다. 무리한 속보 경쟁으로 인한 부정확한 정보와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예측보도로 인해 많은 독자를 오리무중의 혼란과 소모적인 논쟁에 빠뜨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

진실은 스스로 말한다. 그리고 진실이 입을 여는 순간 그때까지 진실에 다가서지 못했던 언론은 부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중앙일보가 더 이상 부끄러워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최정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