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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상에게 진짜 중요한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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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일러스트=김회룡]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나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워싱턴 방문에 대해 불만이 있다. 많은 한국인들과는 다른 이유에서다. 역사적인 미·일 정상회담 다음에 양국 정상들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나는 지켜봤다. 미국 기자단에서 나온 첫 번째 질문은 군 위안부 문제였다. 일본 총리가 일본군에게 희생된 약 20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에게 사과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과연 제일 중요한 질문일까. 이번 방문은 분수령이 됐다. 양국은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새 지침은 장점이 많다. 북한의 도발을 더 잘 저지할 것이다. 동중국해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때문에 중국과 일본이 충돌할 가능성도 줄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안보를 위해 이롭다. 양국 정상들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문안 완성에도 한걸음 더 다가갔다. 한국에도 좋은 성과다. 한국은 결국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이후 한국에 가장 중요한 자유무역협정인 TPP에 가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여러 중대 측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가 이번 회담을 규정하는 유일한 질문이 돼서는 안 된다.

 물론 위안부 여성 문제는 아베가 다뤄야 할 아주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아베의 방미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여름에 백악관을 방문한다. 한·일 정상들은 그들이 지금까지 접했던 질문들보다 훨씬 더 힘든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국 기자의 질문에 아베가 내놓은 답변은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분석가들과 전문가들은 일본 총리의 백악관·보스턴·의회 발언에서 세 가지가 나오는지 주시했다. 일본의 전시 행위를 ‘침략(aggression)’으로 규정하는 것, ‘식민지배(colonial rule)’에 대한 언급, 그리고 진심 어린 ‘회한(悔恨·remorse)’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대신 아베는 전시 ‘성노예(sex slaves)’를 희생자(victims)라고 표현했다. 전쟁 기간에 그들이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때문에 고통받았으며, 그들이 권리를 ‘침해당했다(infringed)’라는 것이다. 일본이 내놓는 여러 발언을 의미론적으로 따지는 게 그토록 중요하게 된 이유는, 일본 정부의 답변이 진심 어린 회한이 아니라 복잡하고 신중한 법률주의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 준비 기간에 나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담론을 쉴 새 없이 반추했다. 이 문제에 대한 진짜 어려운 질문은 아베가 아니라 한국 국민들에게 던져졌다고 믿는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만약 어느 일본 총리가 ‘침략’ ‘식민지배’ ‘회한’이라는 단어를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발언에서 사용한다면 한국은 이를 사과로 받아들이고 최종적인 해결을 위해 나설 것인가. 일본이 뭐라고 하든 이를 ‘진정(眞情)’이 아니라 ‘전술’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모든 형태의 뉘우칠 권리를 계속 거부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치적으로 안전하다. 불행히도 말이다.

 아베에게 주어진 진정으로 어려운 질문은 그의 국방정책이다. 지난주에 일본 총리가 일본의 국가 안보에 대해 미국에서 한 발언들은 모두 일본 정부의 최근 활동 뒤에 숨은 의도에 대한 것이었다. 의도를 묻는 것은 미국의 매체와 전문가들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서다. 일본의 안보 범위가 확대되는 가운데, 일본이 진짜로 시도하는 것은 제국주의 전시 시대의 군사력을 부활시키는 것인가. 일본 국방력의 확대는 ‘범 지구적 시민’을 위한 일본 정부의 기여라는 맥락에서 추진된다는 게 아베의 대답이었다. 아베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일본은 이러한 지구적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나라가 되고자 한다. 손에 손잡고 우리는 미국과 협력해 전 세계에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 기본 가치를 전파하고자 한다. 우리는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나라가 되고자 한다.”

 진짜 어려운 질문은 아베가 ‘말보다 실천을 할 수 있느냐’다. 새로운 일본은 과연 인명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위험한 곳에 병력을 파견할 수 있을까. 수사적인 수위가 높아졌다 하더라도 일본이 계속 전비(戰費) 지원 중심의 수표외교(checkbook diplomacy)에 치중할 것은 아닌가. 일본은 적대적인 환경에 병력과 물자를 투입할 의지가 있는 것일까. 항해의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위해 싸우기 위해 일본인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까지도 일본은 각오하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이 더 어렵고 더 의미 있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외손자인 아베가 답해야 할 질문들이다. 그가 몰래 민족주의적인 꿈을 꾸고 있는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질문들이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