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미니홈피 오면 도토리 드려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문:군대에서 제대할 때 방독면을 갖고 나왔는데 반납할까요?

답:찌개가 타거나 속옷을 못 갈아입어 고약한 냄새가 날 때 요긴하게 쓰세요.

7월 국방부가 인터넷 사이트 싸이월드에 개설한 국방부 '미니홈피' 방명록에 한 네티즌이 엉뚱한 자백성 글을 올리자 관리자가 달아놓은 댓글이다.

이처럼 튀는 댓글을 단 주인공은 국방부 사이버홍보팀 소속인 송명진(28) 중위. 송 중위는 9월부터 국방부의 미니홈피 관리 업무를 맡았다. 그가 관리자로 등장한 이후 남성적이고 폐쇄적인 국방부의 이미지가 한결 부드럽고 친근하게 탈바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 중위는 "미니홈피는 국방부의 이미지 개선에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요즘 국방부가 추진 중인 '국방개혁 2020'에 더 많은 국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도토리 증정 같은 젊은이 취향의 이벤트도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뿐 아니다. 초기 화면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눈이 내리고 음악이 흐르도록 설정해 놓았다. 육.해.공군의 훈련 장면이나 각종 무기를 보여주는 사진, 부대행사 등 소식은 기본. 좋은 시를 추천해놓거나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섹션도 있다. 이런 '탈(脫)군대' 이미지 덕분에 지난 6개월 동안 2만6000여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다. 방문객들이 올린 사진이나 글도 6000여 건에 달한다.

송 중위는 "군대에 간 애인을 둔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의외로 많이 찾는다"고 했다. "운영자가 여군인 걸 알고 어떻게 하면 여군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방문객도 있어요. 그런가 하면 국방부의 발전과 국방개혁 방안에서부터 병영생활 개선책까지 우리 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도 하지요. 가능한 한 모든 의견에 답을 해주려 노력합니다."

송 중위는 경북대를 졸업한 뒤 2003년 3월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남자들의 세계에 도전해보고 싶어 군에 입대했다"고 말했다. 1남 3녀 중 막내딸이 군인이 되겠다고 나서자 그의 부모는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자녀들 중 가장 의젓하다"며 대견해한다고 했다.

개인 인터넷 홈페이지도 운영한다는 송 중위는 "국방부 미니홈피 관리 때문에 신경을 못 써 제 개인홈피는 썰렁함 그 자체"라고 했다. 국방부 미니홈피의 경우 팀원들과 하루 대여섯 차례씩 회의를 하며 운영 아이디어를 짠다고 했다.

글=장정훈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