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비망록>″민정불참″시사로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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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63년 1월하순 민정을 향해 가던 격동의 정국속에서 군정주체는 내부의 파쟁으로 방향을 잃고있었다. 공화당창당의 주역 김종필도, 군정의 수뇌 박의장도 지치고 있었다.
내부의 권력투쟁에다 설상가상은 미국의 압력이었다. 정말이지 그때의 상황은 사면초가였다.
그 어느곳으로도 뚫고 나갈 길이 보이지 않던 곤란한 대결이불타고 있었다. 그런 2윌초순 박의장은 호남지방 민정 시찰을 떠났다. 농촌의 가난과 굶주림의 대명사인 보릿고개의 현장을 보기위한 시찰이었다. 박의장이 농촌시찰에서 돌아온 무렵부터 정계엔 박의장이 민정에 참여하지않기로 결심했다는 소문이 돌기시작했다. 그무렴을 정구영은 이렇게 .회고했다.
『1월 하순, 2월초순 그무렵이야. 미국대사관에서 윤보선의 민정당을 옹호하고 공화당의 창당을 달갑잖게 보는 그런게 뚜렷이 보였어. 그중의 하나지. 미대사관에서 잉여농산물 주던 것, PL4805호로 내보내던 밀가루원조를 일시 중지한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혁명정부로서는 춘궁기에…. 그때 춘궁기라면 요새 사람들예겐 실감이 안갈지 모르지만 60년대초의 춘궁기엔 도시나 농촌합것없이 영세민은 식량이 바닥나 죽도 못끓여먹던 비참한 가난속에있을때야. 혁명정부로서는 그런 춘궁기에 식량을 대지 못하면 퍽곤란한 입장에 빠지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 그래가지고 김종필이 미국 대사 「버거」와 담판하러갔어요.
그때 한밤중인데 우리는 김성진군 집에서 결과를 기다리고…「버거」한테 가서 그랬다는거야. 이자리 (주한미국대사를 말함)에 앉아서 양곡을 안주겠다니 그럼 어쩌자는 얘기냐…민주공화당에 대해서도 격론을 벌였다는거야. 김종필군이 상오2시에 우리한테 와서 그런 소리를하더군. 그때「버거」 하고 많이 싸웠어. 기막히게 투쟁을 했을때야.
책상을 치고 소리를 지르고…. 김종필군 그때 애많이 썼지…그랬지만 그때 우리는 어떻게 돌아가는 맥락인지 잘 모르고…다만 미국이 공화당에 대해 불유쾌하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거 너무한다 그런 생각이었지. 그랬는데 식량문제는 김종필이 노력해서 해결을 했어. 물론 그전에 최고위원들도 많이 애를 썼다고해. 하여튼 그문제는 잘되었다고 했어. 그러나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거든…』
실상 치명적인 장애는 최고회의의 전면도전이었고 그 도전앞에서 군정의 리더 박의장이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던 사태였다.
박의장은 그무렵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내친 걸음이니 이제와서 돌아설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는 이도 있었고 민정에 참여하지 않기로 해서 동기들로부터 받는 원망보다는 출마해서 받게될 심판이 더욱 가혹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진퇴유곡의 입장이었다. 냉혹할이 만큼 침착하고 자신에 차 있던 박의장의 모습은 어디에도 불수 없었다. 『원대복귀도 못할테고…그렇다고 어디 여생을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일자리도 있어야지…』 혼자말처럼 독백하던 그런 나날이었다.
정구영은 그때는 잘 몰랐으나 그 얼마뒤에야 알게된 분쟁의 내막얘기를 뒤로 돌리고 박의장의 2·18성명으로 건너뛰었다.
『나중에야 들어 알게 되지만…그때 권력투쟁의 강도가 자꾸만 높아져, 최고회의 의장고문 신직수였지 아마…대관절 이것이 무엇이오. 나는 영문용 모르겠고….그랬는데 박의장 성명이 나왔지, 2· 18성명이야.』
그때 정구영은 두개의 충격이함께 닥쳐왔다고 했다. 충격의 하나는 박의장의 성명이다.

<돌연 2·18성명나와>
박의장은 2·18성명에서 정치의 체질개선없이 민정수립을 할수 없다는 명제아래 자신의 민정불참 전제조건으로서 9개항의시국수습방안을 재야정가를 향해내던졌다.
①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킬것이며 민의에 의해 수립된 정부를 지지한다 ②다음에 수립될 정부는 4·19정신과 5·16정신을받들어 혁명과업을 계승할것을 확약한다 ③혁명주체 세력은 그들의 개인 의사에 따라 군에 복귀 또는 민정에 참여할수 있다 ④5·l6혁명의 정당성을 인정, 앞으로는 정치보복을 일체 하지아니한다 혁명정부가 합법적으로 기용한 공무원에 대해 신분을 보장한다 ⑥유능한 예비역군인은 그들의 국가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고 능력에 따라 가급적 우선적으로 기용한다 ⑦모든 정당은 중상 모략등 구태적 정쟁을 지양하고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정책대결의 신사적 경쟁으로 국민의 신임을 얻는다 ⑧새헌법의 권위를 보전하고 앞으로 헌법개정은 국민 여론에 따라 합법절차를 밟아서 실시한다 ⑨한-일문제에 대해서는 초당적 입장에서 정부방침에 협력한다.
상기 제안이 수락된다면 본인은 민정에 참여치 아니한다㉯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를 한자, 혁명행위를 방해한자, 부정축재자중 환수금을 납부하지 아니한자, 형사소추를 면할 목적으로 도피중에 있는자를 제외하고 정치 정화법에 의한 정치활동 금지를 전면 해제한다㉰선거를 5월 이후로 연기한다.
박의장은 이같은 제안에 대해 재야정치지도자들은 2월23일까지회답해 줄것을 요구한다고했다.
그야말로 정국의 근원적변화를 예고하는 중대성명이었다.
그날 그성명을 검토하던 정구영은 또하나의 편지를 받았다. 창당준비위원장 김종필이 보낸 편지였다.
『…뜻하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선생님을 비롯한 당의 선배여러분에게 죄송한 매일을 지내오면서 하루속히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어 내려고 동분서주하다가 급기야 오늘 의장성명으로 우리 당으로서는 중대한 계기가 오고 말았읍니다.

<이성 지키려 몸부림>
평안을 가장해오던 생도 이제는 당의 진로와 닥쳐올 제부작용을 최소한도로 막고 재정비해야하겠고 불연이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할 싯점에 놓여있습니다. 생은 양측에 끼여 진퇴유곡의 처지에서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고민을 남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더불어방황해 왔음을 고백하오며 능력도없는 생이 감히 그러한 어려운 일을 스스로 맡고 나섰던것을 뉘우치기도 하고있읍니다. 선생님, 정말 생에게는 흔자있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고력을 상실한 생은 이생만은 잃지않겠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많은기자들의 시달림을 피하여 내일하루라도 혁명동지와 당의 일에서 벗어나 혼자 앞일을 곰곰생각할 시간적 여유틀 가져야하겠읍니다.
선생님과 선배님들의 불변하는 지도를 바라오며 금일 각분과위원장회의에서 내일의 일을 논의해 주시면 그 지도에 따르겠사오니 교시바라옵니다. 금일은 이만 용서바라오며 격동기의 우리당에 힘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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