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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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어느 유명 목사의 20만달러 밀반출 기도사건은 새삼 직업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직업을 사람들은 흔히 「조브」(job)라고 말한다. 미국인들이 즐겨 쓰는 속어다.
「조브」의 원래 뜻은 『밥 한술』이다. 직업을 밥 한술에 비유한 것은 어딘지 서글픈 생각이 앞선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청춘을 바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불태운다는 말인가.
그러나 다른 말도 있다. 「보케이션」(vocation)이라는 영어나, 독일어의 「베루프」(Beruf). 모두 직업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그 어원을 새겨보면 『소명』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신의 부름」을 받아 그런 일을 한다는, 이를테면 「천직」관이다.
천직의 사상은 사회학자 「막스·베버」의 말을 빌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도 되고, 「자본주의의 정신」도 된다. 그 어느 쪽이던 천직은 성실과 정직과 근면을 생명으로 삼고 있다.
천직에서 비롯된 것이 「프러페션」이다. 역시 직업이라는 뜻인데, 「조브」의 사상과는 다르다. 무슨 일이든 천직으로 알고 몰두하면 전문가가 되고 만다. 바로 그런 전문지식을 갖춘 직업인을 두고 프러페셔널하다고 말하기
프러페셔널의 대표적인 한 예가 변호사다. 가령 영국서 변호사(배리스터)가 되려면 벌써 13세기부터 계속되고 있는 전통적인 교육과정을 밟아야한다. 「인즈 오브 코트」에 입학, 학과는 물론이고 학기마다 적어도 6회 이상 만찬(디너)에 출석하는 과정이 있다.
그때마다 가운을 입고 테이블에 깍듯이 앉아서 선배 변호사의 훈시를 듣고, 테이블 매너며 예절, 갖가지 덕행등 「신사중의 신사」가 되는 인간수련을 쌓는다.
변호사란 직업을 「조브」로 평가한다면 그런 절차가 필요 없다. 그러나 변호사라는 직업은 역시 「베루프」다.
종교인의 경우는 변호사와도 또 다르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생활 가운데 한순간도 소명의식을 저버릴 수 없다. 그것 없이는 목사도 신부도 될 수 없다.
종교인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존중해야한다.
하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 긍지를 외면할 순 없다.
오늘 우리 주위엔 이런 천직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조브」는 많아도 「베루프」는 없는 세태가 한결 돋보인다. 우리 주위에선 그나마도 존경할만한 사람을 하나 둘씩 잃어버리고 있다. 세상은 점점 공허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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