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눈」지나친 의식은 "사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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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람마다 버릇이 있고 지방마다 풍습이 다르다. 사회마다 습관이 각각이며 문화마다 가치기준이 틀릴 수 있다. 버릇·풍습·습관·가치의 다양성은 개성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서도 바람직하고 그러한 개성은 될수록 지키고 살려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버릇을 갖고, 모든 지방이 똑같은 풍습을 지키며, 모든 사회가 똑같은 습관을 따르고, 모든 문화가 똑같은 가치를 주장한다면 인류의 생활이 그 얼마나 단조로울 것인가. 획일적인 것은 단조하다는 미학적 차원을 넘어서 창조적인 모든 것과 반대된다. 개성없는 창조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버릇이나 관습이 다같이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귀에 거슬리는 큰 목소리로 떠들면서 그것을 자신의 버릇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남의 앞에서 이를 쑤시거나, 게트림을 하거나, 혹은 식사 후 밥상앞에서 숭늉으로 양치질을 하면서 한국인의 버릇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
우리의 습관이라 해서 남들앞에서 이를 쑤시고 아무데서나 침을 뱉는다고 해서 제것을 아끼는 일이 될 수 없으며 전통과 주체성을 지키는 일도 아니다.
개인의 입장에서나 사회적 관점에서 또는 문화적 차원에서 나를 막론하고 참다운 개성은 맹목적인 고집과 고수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성과 이성적 검토에 의한 부단한 창조적 수정속에서만 살아 남고 빛날 수 있다. 전통이 없는 삶이 뿌리없는 나무와 같긴 하지만 그 나무가 살아나고 크려면 부단한 신진대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전통은 변화할 수 없는 농짝이 아니라 살아있는 귀중한 고목인 것이다. 전통은 고집이 아니다.
타인의 눈은 나의 반성을 자극하고 나의 객관적 평가를 요청한다. 그러나 참다운 반성과 스스로의 가치평가를 남의 눈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나의 자주적 이성에 의한 나의 판단에 바탕을 두어야한다. 만약 남의 눈에만 의존한다면 나의 주체성은 상실된다.
우리의 문화적 자주성애 대한 의심 보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들의 사고의 빈곤은 우리가 무엇을 결정하고 바꾸는 동기에서 더욱 짙어진다. 「외국인」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고속도로 연변 초가들의 지붕이 원색적 색깔의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뀐적이 있었다.
혹시 초가 지붕보다는 원색적 슬레이트 지붕을 우리자신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개량을 결정하는 이유가 우리스스로의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들 외국인의 취미와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우리가 추측한바와는 달리 외국인이 엉터리 슬레이트지붕보다 특색 있는 초가지붕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되면 다시 슬레이트 지붕을 뜯고 초가로 만들겠다는 이론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나귀를 장터로 팔러 몰고 가는 이솝의 우화에 나오는 두 부자와 다를 바가 없다.
두 부자가 웃음거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듯이 우리들도 결국은 남들의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남의 눈을 생각하는 것은 성숙했다는 증거다. 남을 의식한다는 것은 예의를 갖출 수 있다는 징후다. 손님을 맞이할때 가능하면 그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집안을 깨끗이 함은 그 동기가 아름답고 문화적인 예의를 갖추려는 미덕이다. 그러나 손님을 깨끗한 환경속에 맞이하는 일과 손님의 눈을 잠시 속이려는 것과는 똑같지 않다. 진실성이 결여된 예의는 가식에 지나지 않으며 극단적으로는 손님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외국인에 잘 보이고자 애쓰는 것 같다. 흔히 우리는「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한국사람을 어떻게 보느냐?」고 외국인의 생각을 알고자하는 경향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아직도 자신을 갖지 못함을, 자주성을 결하고 있음을, 나쁘게 말해서 사대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질 때가 됐다. 나쁘건 좋건, 어렵고 괴롭건 간에 우리는 이제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한 국민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가치를 판단하고 문자 그대로 자립해야할 때가 되었다.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자주적으로 살아야할 때가 됐다.
말로만, 겉으로만 고유의 문화,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을 아름답게 이어가고 표현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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