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덤핑 마진률 하향조정폭도 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국의 대한수입규제강도가 재확인됐다. 우리나라 컬러TV에 때린 덤핑마진을 조기 재심해달라는 한국측의 요청을 미국정부는 매우 세련된 수법으로 밀어놓았다.
지난 4월30일 미상무성이 한국산 컬러TV의 미국시장내 덤핑마진을 평균 14·64%로 판정, 그만큼의 관세를 부과하자 한국업계는 즉각 (5월4일과 7일) 미관세법 7백36조에 규정된 조기재심을 신청하고 그 동안 초조하게 미정부의 하회를 기다려왔다.
새로운 정보제공에 따라 덤핑마진에 변동이 가능한 경우 관세부과명령이 내려진 후 90일 이내(이번 경우는 7월30일까지)에 심사를 끝내도록 이 조항에 규정돼있다.
조기재심 요청이 없는 경우에는 관세부과명령이 있은지 1년 후부터 12개월 사이에 덤핑마진률과 관세에 대해 연례심사를 하게돼 있다 (동법 7백51조).
7백51조에 의한 재심의 경우 심사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덤핑관세를 현금으로 예치했다가 정산해야하는데 반해 7백36조에 따른 조기재심은 현금대신 유가증권이나 공채를 공탁토록 함으로써 현금예치에의 이자부담을 덜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미상무성의 이번 결정은 7백36조의 조기재심을 검토할 자료가 방대해 법정시한 내에 끝낼 수 없으니 불가능하고 그 대신 7백51조의 연례심사를 앞당겨 해주겠다는 것이다.
조기재심이 신청될 때만해도 우리업계나 정부에서는 미측의 호의적 처리에 어느 정도 낙관적 기대를 걸고있었다.
미측이 한국정부에 건네준 언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기재심신청에 대해 미국이 『충분하고도 진지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약속한, 김진호-「볼드리지」한미통상장관의 공동성명이 그것이다.
한국측이 미국의 「충분하고 진지한」검토가 있기를 바랐던 대목은 덤핑마진에 관한 미상무성의 최종판정때 반영되지 않았던 한국측 주장들이다.
덤핑마진계산에 있어 원가차이를 고려치 않은 데 대해 재고가 있어야한다는 얘기다. 같은 규격의 컬러TV라도 내수용이 수출용보다 원가가 비싸게 먹힌다.
또 내수용은 외상할부판매에 따른 대손이나 애프터서비스비용을 고려, 광고비용등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미상무성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열거한 한국측 조기재심요청에 대해 미정부는 실질적인 심사가 없이 『자료가 방대해 법정시한 내에 심사를 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최근 이같은 미국의 입장이 외교채널을 통해 표면화되기 시작하자 서울과 워싱턴에서는 마지막 외교교섭이 숨가쁘게 전개됐다.
특히 미상무성이 관세법 7백36조에 의한 조기재심 불가입장을 주미대사관을 통해 밝힌 5월말부터 이를 공식서한으로 한국정부에 전달하기까지 보름동안 집요한 마라톤협상이 진행됐다.
이 기간중 유병현주미대사를 비롯한 주미대사관직원이 매일 미상무성에 「출근」했고 이 무렵 유럽을 순방 중이던 김장관은 낮에는 방문스케줄로 움직이고 밤이면 서울·워싱턴과 접촉하면서 협상을 지휘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신의를 저버리는 경우의 상황을 경고하기도 하고 대미구매계약의 재고등 대응조처가 불가피해진다는등 한국측이 초강경자세로 나오는 바람에 관세법 7백51조에 의한 연례심사를 11월말까지 완료하겠다던 미국이 이를 1개월 앞당긴 10월말로 수정 제의하게된 것으로 알려졌다.
7백36조에 규정된 조기재심이 성사되지 않자 상공부는 『내년 5월 이후 86년4월말까지 하게 돼있는 연례심사를 10월말로 앞당겨 실시하는 것도 「조기심사」』라고 강조하면서 이 「조기심사」에서도 미상무성이 검토하는 자료는 지난 5월 우리업계가 제출한 것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로 남는 것은 10월말까지 끝날 연례심사때 반덤핑관세율 14·64%가 얼마나 하향조정 될 것이냐는 것이다.
상공부는 미측에 제시한 원가만 제대로 반영된다면 관세율은 상당히 내려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희망적으로 전망하고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취하고있는 수입규제강화태세를 감안하면 낙관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업계와 노조 등의 눈치를 보아야할 미행정부로서는 외국상품에 대해 더욱 수입규제의 고삐를 죄어야하는 입장에 몰려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와 업계는 현명한 대책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금년만도 1백억달러 이상이 걸린 우리의 최대시장이다. 잃어서는 안될 시장인 만큼 더욱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장사가 잘된다고 집중호우 식으로 실어내거나 업체간 가격경쟁을 벌이는 등의 행위는 없어야한다.
82년 미국에 1억1백만달러(61만9천대) 어치가 수출됐던 컬러TV가 83년에는 2억7천7백만달러 (1백93만3천대)로 한해사이에 금액은 1백74%, 수량은 무려 2백12%가 늘었다.
가격규제가 나오면 최저가격제등으로, 물량규제가 실시되면 반제품 또는 부품수출후 현지공장에서 조립하는등 기동적으로 대처해야하며 이를 위해 정부는 정보수집과 로비·교섭 등의 능력을 키워야할 것이다. <한남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