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800억달러 … 넘치는 오일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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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강세를 유지하면서 산유국들에 '오일달러'가 넘쳐나고 있다. 산유국마다 인프라 건설이 붐을 이루고 있고, 부동산값과 주가가 오르면서 경기 활황의 단맛을 만끽하고 있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무기 삼아 국제 사회에서 발언권을 확대하고 있다. '오일 샌드(油沙)'로 유명한 캐나다의 앨버타 주에선 주민 1인당 400달러(약 40만원)의 현찰을 나눠주기도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000년부터 5년간 중동에 흘러간 오일달러는 총 1조500억 달러"라고 분석했다. 올 한 해 동안에만 3550억 달러(약 370조원)가 중동으로 유입됐다. "중동과 러시아.베네수엘라 등 19개 주요 산유국이 올해 원유.가스.석유제품 수출로 벌어들인 오일달러는 7810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뉴욕 타임스는 최근 보도했다.

◆ 중동 지역=각국은 1970~80년대 1, 2차 오일 붐 당시 사치성 소비재 수입과 과시성 이벤트 사업에 흥청망청 돈을 썼다. 요즘엔 재정 안정과 인프라 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중동.중앙아시아 각국은 유가 상승으로 들어오는 추가 오일머니의 36%만을 소비 지출에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머지 60~70%는 해외자산 구입과 인프라 투자에 돌리고 있다.

무엇보다 건설경기에서 오일 붐을 실감할 수 있다. 연 1000억 달러 이상의 인프라 투자가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력.담수화.정보통신 분야에서 대형 프로젝트들이 속속 발주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올해 570억 달러(지난해 261억 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재정흑자를 냈다. 원유 수출액이 37.5%나 급증하면서 재정수입이 5550억 리알(약 1480억달러)에 이른 덕택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내년 예산(3350억 리알) 중 신개발 사업계획에 1260억 리알을 배정했다. 그중 26%를 교육 분야에 투입하고 공무원 봉급도 15% 인상했다. 장기 프로젝트 중 ▶담수화.발전(160억 달러)▶철도(58억 달러)▶석유화학 분야(22억 달러) 등에 뭉칫돈을 투입한다.

아랍에미리트와 이란.오만 등도 비슷하다. 아랍에미리트는 건설 분야에 200억 달러, 발전.송전 분야에 44억 달러를 지출할 계획이다. 이란은 인프라 건설과 통신 분야에 50억 달러, 발전.석유화학 플랜트에 1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허브(중심)를 꿈꾸는 해안 도시 두바이는 오일달러가 만든 파라다이스다.

사막이 녹지로 바뀌고 바다를 메워 만든 인공 섬, 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버즈 두바이' 빌딩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160층으로 건설된다. 2008년 완공을 목표로 10억 달러가 투자돼 분양까지 마쳤다. 또 사막 한복판에 만든 실내 스키장에는 10억 달러나 들어갔다.

◆ 러시아.중앙아시아=곳곳에서 소련 시절의 낡은 건물이 헐리고 초현대식 빌딩이 들어서고 있다. 고속도로.철도를 놓고 통신시설을 새로 까는 등 인프라 확충에 매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위기에 대비해 '안정화 기금'을 만들어 연말까지 520억 달러를 비축할 계획이다. 현재 외채액은 1070억 달러. 하지만 오일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모스크바 시내엔 30층 이상의 초대형 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부동산값도 폭등세다. 경제성장률이 연 7%를 넘어서면서 개인 소비도 급증했다.

카자흐스탄은 초원 위에 인구 100만 명 규모의 신수도 아스타나를 97년부터 건설 중이다. 10년간 300억 달러가 들어가는 대역사(大役事)다. 경제성장률은 2000년부터 6년 연속 두 자릿수를 보여 초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2020년께 오일달러 규모가 500억 달러로 늘어난다는 장밋빛 전망 아래 재정지출은 급증 추세다.

◆ 남미=베네수엘라는 300억 달러의 외채가 있지만 오일달러를 좌파 정권 유지와 반미 노선 결속에 돌리고 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국내 휘발유 가격을 갤런(3.78ℓ)당 10센트(약 100원)로 유지하고 있다. 또 반미 진영에 선 이웃 국가에 대해선 국제 시세보다 훨씬 싸게 원유를 대주고 있다.

이양수 국제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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