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내수기업이 에너지수출 다크호스로 한전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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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10대 기업 명단에 들어간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나 LG전자를 떠올릴 수 있지만 정답은 한국전력이다. 한전 필리핀 현지법인은 필리핀 전체 전력 공급의 12%를 맡고 있다. 제2대 민간 발전사업자로 지난해 10대 기업에 포함됐다.

전형적인 내수기업인 한전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한전 한준호 사장은 "연평균 5~6%씩 성장해온 국내 전력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해외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필리핀은 한전이 진출한 첫 해외시장이다. 당시 경제개발에 적극 나선 필리핀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절실했다. 그러나 한전은 50년동안 국내 발전소를 운영해 온 경험은 있었지만 해외시장에선 초보였다. 이 때문에 한전은 노후 발전소의 성능 개선사업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한전이 운영을 맡은 말라야 화력발전소는 65만㎾급이었지만 노후화한 설비 때문에 50%도 가동을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한전은 3년만에 노후 발전소를 필리핀에서 가장 효율이 높은 발전소로 탈바꿈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한전은 99년 필리핀 최대 국책사업인 '말람파야 가스전 및 발전소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2002년 5월 완공한 일리한 발전소는 전력 전문잡지인 미국 '파워지'로부터 2003년 세계 최우수 발전소로 뽑혔다. 이길구 필리핀 현지법인 사장은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을 한 해에 열 번 이상 만나는 유력인사가 됐다. 한전이 지난 16일 아로요 대통령의 정치기반인 세부에 20만㎾ 발전소 건설 착공식을 하게 된 것도 이 같은 성공에 힘입은 것이었다.

필리핀 사업을 계기로 한전은 아시아와 중동 전력시장에서도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50년 이상 발전소 건설과 운영 경험을 쌓은 데다 해외시장 개척 경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한전이 다음으로 노리는 시장은 중국이다. 한 사장은 "중국은 한국 전체 발전용량의 50%인 3000만㎾의 발전설비를 매년 확충해가고 있는 전력시장의 보고"라고 설명했다. 한전도 지난해 허난성(河南省) 우즈(武陟)에 10만㎾ 열병합발전소 건설을 시작했고, 지아주오(焦作)시에서는 60만㎾ 화력발전소 투자 협정을 추진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전은 중국에 원자력 발전소의 수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때 한전이 중국측 관계자를 대거 초청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한국의 기술력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중국측도 국내 원자력 발전소를 둘러보고 태도가 확 달라졌다는 게 한전측 설명이다.

한전 김진식 홍보실장은 "아시아에서는 동남아는 물론 중국, 인도, 중동 등의 경제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전력설비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며 "한전은 2015년까지 해외에만 국내 발전용량의 6분의 1수준인 1000만㎾의 발전설비를 갖춘 에너지 수출기업으로 변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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