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그래, 나 자뻑이야, 그러니 예술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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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점선 지음, 여백, 192쪽, 1만3500원

"내가 아는 화가 김점선은 황금의 점과 선으로 이뤄진 야생마다. 미친 말이 우리 삶을 짓밟고 다니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김점선의 말발굽에 의해 죽었던 황무지에 잔인한 감각이 되살아나고, 툰드라의 동토에 꽃이 자란다. 광란하라, 점과 선이여. 우리 곁에서 마음껏 춤추라."

소설가 최인호(60)가 '못말리는 자유인'김점선(59)에게 바치는 헌사인데, 타이밍이 썩 좋다. 화가로 뜬 지 오래이고, 최근 몇 년 새 단행본 '10cm 예술' 등을 통해 고정팬을 모으더니만 그'야생마의 말발굽'은 TV브라운관을 점령했다. 그게 지난달이다. KBS'문화지대'(목요일 10시)의 '김점선이 간다'코너 진행자."왠 돈키호테냐"는 일부 반응에도 기세 좋게 달린다. 메이크업 따위의 치장을 거부한 맨 얼굴에 반말까지 섞는 파격의 진행은 매너리즘에 빠진 TV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 화가.저자.TV 진행자로 뜨고 있는 김점선(右)의 디지털 회화인 ‘자화상(左)’. 작가의 자유로운 기질이 잘 드러난다.

김점선 식 글쓰기가 잘 발휘된 예술 산문 '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는 '괴물 본색'이 드러난다. 미친 말의 질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마저도 가볍게 밟아버린다. 이를테면"미술사의 우상 다빈치는 해부도에 매혹된 어떤 촌놈일 뿐"(42쪽)이라는 선언…. 사람들은 다빈치 그림처럼 안 그려지면 "못 그렸다"며 부끄러워하면서 스스로 창의력을 죽이고 살지만, 화가라면 머리부터 깨끗이 비운 뒤 붓을 들라는 권유다.

따라서 이 책은 갑년(甲年)을 앞 둔 나이에 뜨고 있는, 나중 난 뿔이 우뚝한 김점선 식의 자유선언이다. 대단하다. 4~5년 전 부스스한 머리에 히피 스타일의 옷차림 때문에 고급호텔 앞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던 사회부적응자가 변신한 것일까? 아니면 대~한민국이'괴물'을 수용한 것일까? 사실 그는 변치 않았다. 핵심 메시지 '자뻑 정신'만해도 그렇다. 자뻑? 스스로 취해 뻑 간다는 뜻이다.

"재능으로 예술가가 된다고 말한다. 스승이 중요하다고도 한다. 나는 말한다. 자뻑이야말로 예술가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겸손은 사람을 죽인다. 나는 겸손한 사람을 보면 도망간다. 겸손은 거짓이다. 자뻑은 절대적이다. 자뻑이라는 미친 상태로 일생을 채우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다." (119쪽)

힘이 넘치는 문장이다. 이런 메시지가 통조림 삶에 활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김점선은 개성 출신. 이화여대.홍익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1972년 파리비엔날레 출품 후보에 선정됐고, 83년 이후 지금까지 매년 전시회를 가졌다.

동향 선배인 소설가 박완서씨와 절친하며, 최근들어 뭉쳐 다니는 영문학자 장영희, 소프라노 강미자와의 교유도 책 곳곳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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