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에세이] 한심한 중국인 한자 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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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부귀에 현혹되지 않으며(富貴不能淫), 가난해도 의로운 뜻을 잃지 않고(貧賤不能移), 권세와 무력에 굴복하지 않는다(威武不能屈)'. 맹자가 갈파한 사내대장부의 세 가지 조건이다.

세 가지 덕목 가운데 '부귀에 현혹되지 않는다'가 가장 자주 회자(膾炙)된다. 중국인들은 특히 이 글귀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요즘 중국 젊은이들 중에는 이 말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최근 상하이(上海)에서 실시된 고급통역사 시험에서 기상천외한 답이 나왔다. 영어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 응시한 이 시험에서 '부귀에 현혹되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영역한 답안 중에 "be rich, but not sexy(부자가 되라. 섹시할 필요는 없다)"라는 엉뚱한 답이 나왔다고 문회보는 보도했다.

'인민의 피와 땀으로 쌓은 만리장성(血肉長城)'이라는 말을 푼 것 중에는 "the long wall of blood and meat(피와 고기로 만든 장성)"라는 답이 나왔다.

이 글귀는 중국 국가(國歌)에 나온다. '우리의 피와 땀으로 새 장성을 쌓자'라는 대목이다. 단어뿐 아니라 해설까지 제시된 구절인데도 일부 응시자들은 그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 다시 말해 '사람은 태어나면서 선한 성격을 지닌다(人之初性本善)'를 영역한 답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인류의 출현 이후 섹스는 늘 좋은 것이다(since the beginning of human beings, sex is always good)"

중국인들의 한심한 중국어 실력이다. 문회보는 상하이 명문 푸단대학의 중국어 경시대회에서 외국 유학생팀이 국내파를 누른 이후 또 한번의 충격이라고 꼬집었다.

중국의 입시 위주 교육, 취업만을 위한 외국어 숭배 태도가 불러온 폐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 않나 돌아볼 일이다.

베이징 = 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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