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기 납치범의 향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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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작년 5월 중공 민항기를 납치, 춘천에 불시착했던 중공인 6명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심이 22일 모두 골났다.
이로써 한국은 이들의 범행에 관한 재판관할 국가로서의 사법적 절차를 모두 끝내고 그 판결의 집행에 따른 정치적 결단만 남기고 있다. 정치적 결단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엄격한 법절차에 따른 행정부의 행형절차인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 자체가 법 논리와 현실상황 사이, 그리고 상반된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 사이에 놓여있어 현명한 선택이 요구되는 미묘한 문제가 되어있다.
범인들은 공산체제를 거부하고 자유를 찾아 반공국가로 가기 위해 반공국가인 우리 나라를 경유지로 삼아 불시착한 「정치적 피난」을 한 것임은 분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치적 피난은 정치망명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 것이 국제법상 하나의 관례로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적 피난을 위해 저지른 수단적 행위가 실정법상으로 엄연한 범죄행위를 구성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더구나 이번 범인들의 행위 중 무기의 불법수입이나 무허가 입국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도 있겠으나 많은 승객을 무기로 위협하고 상해까지 입혀가며 민항기를 납치했다는 사실은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근래에 테러분자들에 의한 민항기와 승객의 납치·폭파행위가 인류의 인권을 위협해온 사실을 규탄해온 우리로서는 더욱 용납하기 어려운 범행이다.
따라서 범인들은 그에 따른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하며 자유에 대한대가로 그 정도의 희생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은 국제법과 국제관례를 준수하는 법적 주체임과 동시에 공산주의와 접해 있는 반공국가로서 자유를 수호하고 인도주의를 신봉해온 도덕적 주체라는 것도 분명하다.
따라서 반공과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윤리적 의무이기도 하다.
대법원 판결문은 어떤 행위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동기와 수단의 정당성과 그로 인한 법익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져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같은 균형논리에 입각하여 우리는 이번 문제가 엄격한 법적 재정과 정치적 결단의 균형, 법의 논리와 현실상황 사이의 균형이 중요함을 강조코자한다.
특히 범인들은 이미 13개월째 구속상태에서 형을 치러 왔다는 것도 아울러 지적하는 바이 다.
이번 사건은 엄연한 법률적 사건일뿐 아니라 미묘한 정치적·외교적 사건이기도 하다. 이런 사건들은 법적인 테두리에서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국제관례가 입증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을 저버리지 않는 방향에서 처리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적절한 형기를 마친 뒤 범인들이 희망하는 지역으로 강제 퇴거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의 처리는 오로지 우리 나라의 고유한 주권에 관한 사항이므로 북경이나 대북 당국이 지나치게 관여하거나, 우리정부가 그 관여에 좌우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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