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사회의 불신풍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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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무원 처우개선을 의해 퇴직금에 20%를 가산해주자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기획원이 다른 문제 첨가를 들고나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일단 처리가 보류됐다. 이에 대해 공무원사회에서 크게 여론이 일자 기획원측은 부랴부랴 연금가산지급을 내년부터 시작하는 데는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공무원 모두에게 좋은 일이고 국민들에게도 추가부담이 없는 공무원 연금가산지급이 스무드하게 처리되지 않고 이렇게 잡음을 빚은 건 공무원사회의 상호불신감 때문인 것 같다.
기획원은 이번 법개정 기회에 재정부담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공무원복지·후생부문에 1조3천억원정도 조성되어있는 연금기금의 일부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트고자했다.
우선 연4백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 공무원자녀 대여 장학금을 연금기금에서 충당하자는 것이다. 대신 대여금이 회수되기까지의 기간 중 그 부분을 연금기금에서 활용하지 못해 오는 손실은 국고에서 지원해주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그러면 정부는 연간 28억원 정도의 국고지원으로 4백억원의 예산지출을 줄일 수 있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기 위해 연금법 72조의 「대여금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는 조항을 「부담할 수 있다」로 고칠 것을 주장했다.
일견 상당히 합리적인 이러한 기획원측의 구상은 그러나 연금관리 주무부처인 총무처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부처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런 사정에서 기획원이 지난번 국무회의에 연금법 72조 개정도 함께 하자는 안을 상정시키자 연금법 개정안이 전체적으로 심의 보류됐던 것이다.
그러면 28억원의 국고지출만으로 4백억원의 예산을 절감한다는 기획원측의 묘방이 외면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공무원 스스로도 정부의 행위나 약속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오늘날 공무원사회의 풍토 때문이다.
목적세로 거둔 교육세가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한시적이었던 방위세가 상시세화하는 사태는 공무원 스스로가 정부의 조치를 절대신임까지는 못하게 하는 한 요인이 됐다. 특히 장기근속수당을 6만∼8만원으로 올려 4급까지 확대 지급하겠다고 국무회의에서 의결까지 해놓고 헌신짝처럼 버린 것은 공무원들의 뇌리에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때문에 많은 공무원들이 대여장학금의 경우도 이자 28억원씩을 잠시동안 지급하다가 아예 연금기금으로 떠맡기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니고 있다.
정부가 「예산동결」로 경제부문에서는 큰 성과를 거뒀는지 모르나 이렇듯 정부에 대한 공무원들의 신뢰를 약화시킨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도 이러는 판에 어찌 일반 국민이 정부당국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따를 수가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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