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가업승계 중기 137곳 그들의 고집과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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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전통옹기는 전통 제작방식을 고집하는 바람에 한때는 가족의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일본 등 4개국으로 수출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8년 전에는 황 사장의 막내 아들인 진영(33)씨가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회사에 들어왔다.


그는 가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고향 인근의 한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있다. 진영씨는 "어릴 땐 '점놈(옹기를 만드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놀림도 받고 가정형편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3가에서 수제(手製) 등산화를 만드는 송림제화. 1936년에 문을 연 이 회사는 2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덕해(54) 사장은 92년 부친(이귀석, 96년 작고)에게서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는 경희대 지리학과를 졸업, 무역회사 등을 다니다 가족의 설득으로 제화 사업에 합류했다. 선친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운영하던 양화점에서 신사화 제조기술을 익힌 뒤 지금의 자리에서 '송림화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송림은 원래 신사화를 주로 만드는 구둣방이었다. 하지만 60년대 초 군화를 개조한 등산화를 만들면서 등산화 전문업체로 이름이 더 났다.

이 사장은 현재 7명의 종업원과 함께 연간 3000여 켤레의 수제 등산화와 신사화 등을 만들어 4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송림의 등산화는 탐험가 허영호씨,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유명 산악인과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다. 이 사장은 "100% 수제화만 고집하다 보니 등산화 한 켤레를 만드는 데 최장 일주일이 걸리는 등 아직은 월급쟁이보다 수입이 못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가업승계(家業承繼) 기업의 대부분은 창업 초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통기법을 지키고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14일 내놓은 '가업승계 기업의 경영특성 및 애로실태' 란 보고서를 보면 대를 잇는 중소기업 10곳 중 6곳 이상은 창업 이래 대대로 전승되는 독특한 경영 비법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가족의 대 잇기'는 경영 비법을 계승.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업력(業歷) 30년 이상이면서 가족이 대를 잇고 있는 전국 중소제조업체 137개사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기협중앙회는 가업승계 기업의 어려움을 살펴 이들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이 조사를 처음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업승계 기업은 ▶독특한 경영 비법 보유▶경영자의 높은 애사심▶ 거래처와의 신뢰와 한 우물 경영▶체계적인 후계자 교육 등의 특징이 있으나 급속한 시대변화에는 잘 적응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가 일본.이탈리아 등과 비교해 가업승계 기업이 현저히 적은 이유에 대해서는 55.9%가 '기업하기 힘든 환경 때문'이라고 답했다. 기협중앙회 소기업유통서비스팀 양옥석 과장은 "오래된 기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쉽지 않고 일부 전통기업 사업장은 정부의 규제에 묶여 사업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며 "가업승계 기업은 부가가치 창출과 일자리 창출 등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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