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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인종충돌 폭력사태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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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호주 시드니에서 발생한 백인들의 인종차별적 폭력사태가 확산되는 가운데 경계 강화를 위한 자국의 비상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시드니가 속한 뉴사우스웨일스(NSW) 주의회는 경찰이 비상조치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15일 긴급처리키로 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13일 전했다.

NSW 경찰은 폭력사태 발생 사흘째인 13일 밤 시드니 주변에 대한 순찰 경찰 병력을 평소의 4배인 450명으로 증원했다. 이와 함께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특수경찰부대(SFS)도 투입했다. 경찰의 이 같은 경계 강화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최고 수준이다.

◆ 경찰의 비상조치권 강화=주의회가 마련할 법안에 따르면 경찰은 사태 진압을 위한 거의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경찰은 폭력사태 방지를 위해 ▶일정 지역을 폐쇄하고▶자동차 등 교통수단을 압류하고▶특정지역 내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폭도에 대한 처벌을 최대 징역 15년까지 강화하는 권한을 얻게 된다.

야당도 긴급 법안 마련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에 법안은 15일 통과될 것이 확실시된다. 모리스 아이엠마 NSW 주지사는 "폭도들이 사회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코 그들이 승리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전국으로 확산되는 폭력사태=시드니 인근 지역 폭력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남부 애들레이드와 서부 퍼스에서도 인종차별적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퍼스에서는 12일 아랍계 일가족이 백인 10여 명으로부터 봉변을 당했다.

백인들은 아랍계 주민에게 계란을 던지고 욕설을 퍼붓고 문을 발로 차는 행패를 부렸다. 애들레이드에서는 레바논계 택시 기사가 백인 승객의 주먹 세례를 받았다. 북동부 골드코스트에서도 인종 폭동 참여를 촉구하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유포되고 있다.

시드니 남쪽 마루브라 지역에서는 화염병이 경찰에 의해 압수됐다. 12일 밤에는 폭도들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야구 방망이와 쇠파이프 등을 휘둘러 기물을 파손하는 과정에서 경찰 3명을 포함해 8명이 부상을 입었다. 5명이 체포됐다.

◆ 백호(白濠)주의 부활하나=호주는 백인우월주의인 백호주의(White Australianism)로 악명 높았다. 백인들의 이민만 받아들이는 정책이 1978년까지 계속됐다. 백호주의 폐지 이후 아시아계 이민이 늘어나면서 문화의 다양성과 관용의 나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2000년 발생한 빌랄 스카프 집단강간 사건이 인종 갈등의 불씨를 던졌다. 레바논계 갱조직이 호주 여성을 집단 폭행한 사건 이후 아랍계에 대한 감정이 나빠졌다.

반무슬림 감정을 폭발시킨 계기는 2001년 9.11 테러와 이어진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테러다. 발리 테러에서는 호주인 88명이 몰사해 '호주의 9.11'로 불린다.

앤드루 스키피온 NSW 경찰청 차장은 "폭력사태에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네오나치 세력이 가담했다"고 말했다.

폭력사태 현장에서는 극우단체인'애국청년동맹'의 피켓이 목격되기도 했다. 10월 프랑스 폭동의 경우 소외당한 소수 무슬림 청년들이 일으켰지만 이번 호주의 경우엔 무슬림을 겨냥한 백인 인종차별자들의 폭력사태에서 비롯된 셈이다. 12일 밤엔 무슬림 청년들의 보복성 파괴 행위가 이어졌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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