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교황「요한·바오로」2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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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교황의 방한 일정이 모두 끝나 지금은 다음 순방지로 가는 기내에 계신다. 파푸아뉴기니·솥로몬제도·태국등을 더 거쳐서야 귀국하신다니 피로와 긴장이 과중치 않을수 없으리라.
그분을 순례의 교황이라고도 부른다지만 사실상 여행이 빈번하고 지역도 광범위하다. 그러나 명분이 값지고 준비에도 만전을 기하므로 하여 공헌과 교훈을 헤아리게만 한다.
한국 순교복자 1백3위를 성인품에 올려 시성하게 된 이번 일만 하더라도 그 인가는 지난83년9윌27일에 되어졌었고 교황청과 한국교회 양측의 애씀도 다양했으려니와 교황께서 한국어 학습까지를 계획에 넣어 노고함은 정녕 놀라운 일이었다. 더하여 선례 없는 다수시성인 점과 로마가 아닌 극동의 한국에서 집전하는 일들이 애초엔 상상을 초월하는 결정으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점이 현 교황만이 하실수 있는 대담한 선, 담력 있는 실행일 듯이 여겨진다. 본질을 살펴내는 동찰과 이에 따른 확신의 성숙이 성립되기만 하면 그 나머진 한점 흔들림 없는 추진뿐인 대인적기개의 느낌을 받는다.
사제직을 결정할 때도 부친이 임종하신 자리에 열두시간이나 꿇어 숙고한 결과였다는 것이며 26세에 서품, 28세에 신박등 그 출발지점부터가 면학하고 교육하며 인간적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생애를 봉헌하는 크신 사제의 길을 걸었으며 조국 폴란드를 소련군이 점령하여 공산정권을 수립하고 7백명의 성직자를 체포한 상황일때 그분은 유학지 로마를 떠나 감연히 입국하였고『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두렵긴 하나 내 민족이 있는 곳에 나의 일이 있다』고 대답한 일등 감동적인 일화도 많이 기록에 나와 있다.
정의와 평화, 용서와 화해등 가톨릭적인 요체를 보다 공고히, 그리고 보다 넓게 나누려는 일에 헌신해 옴을 오늘날 온 세계인이 신뢰하고도 남음이 있다.
피로 물든 한국 천주교회.
중국을 거쳐 온 서학서의 진리에 회감하였다곤 해도 철통같은 쇄국정책에 가위 눌려 외딴 섬처럼 길이 끊기고 장구한 세월, 가시밭길이기만 하던 한국천주교회 신앙을 위해 목숨 바친 장한 이들을 오늘 성인품에 올려 주의 진리를 만방에 비추는 그 횃불되게 하셨으니 그 결정 얼마나 바르고 아름다운 것인가.
그렇듯이 좋은 선물을 가져오면서 최선의 최선이 되려고 세심히 준비한 나눔의 풍요, 거기에서 과연 지고의 스승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배우신분의 참모습을 절감케 한다.
한국 순교성인 시성의 감격이여.
눈으로 보았으니 눈의 영광이요, 그분들 삶의 의로움을 본받을 양이면 삶의 더 없는 승리까지도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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