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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스타가 없다" 외면당한 남자 골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코리안 투어가 23일 개막한다. 경기도 포천 몽베르 골프장에서 열리는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이다. 여자 프로골프투어는 지난 9일 제주도에서 시작했는데 남자는 2주 늦었다.

늦게나마 봄이 온 것 같지만 봄은 아니다. 이번 대회를 마친 뒤 대부분 선수들은 50일 가량 쉬어야 한다. 동부 프로미 오픈은 순수 코리안 투어로는 올 봄 유일한 대회이기 때문이다.

5월엔 SK텔레콤 오픈이 열린다. 그런데 이 대회는 원아시아 투어와 공동으로 주관한다. 한국 투어 몫은 70명이다. 상위 랭커 70명을 뺀 나머지 선수들은 이 대회에 나가지 못한다. 반면 여자 투어는 호황이다. 올 4월과 5월에만 국내 여자대회는 8개에 상금은 45억원이다. 같은 기간 순수 국내 남자 대회는 단 1개에 상금은 4억원에 불과하다.

박호윤 KPGA 사무국장은 “묘안이 없다. 스타를 공장에서 찍어낼 수도 없다. 꾸준히 노력하고 있지만 갑자기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박 국장은 또 “여자는 국제 경쟁력이 좋다. 신체 특성상 세대 교체가 빨라 남자 선수들에 비해 참신한 선수들이 많이 나온다. 남자는 대회 수가 적어 다승자가 나오기가 어렵고 여기에 군대 문제까지 겹쳐 복합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스포츠의 인기는 국제 경쟁력과 관련이 크다. 국내 스포츠 팬들은 세계 최고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진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박찬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박지성이 뛸 때 전 국민이 열광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남자 골프가 상대적으로 더 위축돼 보이기도 한다.

프로 스포츠는 스타가 이끈다. 한국 남자 프로골프에선 2007년 김경태(29·신한금융그룹)와 배상문(29)·김대현(27) 이후 걸출한 젊은 스타를 찾기 힘들었다.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은 “운동선수를 지망하는 어린이 중 여자는 골프가 1순위인데 남자는 야구나 축구가 먼저다. 또 남자 골프에서는 박찬호·박지성 같은 세계 최고의 수퍼스타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경주나 양용은이 뛰어난 활약을 하긴 했지만 남자 골퍼들은 전반적으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못했다. 학부모에게는 그의 2세가 골프라는 스포츠를 통해 안정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

새로운 스타는 자연적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만들어지기도 한다. 허인회(28·상무)나 이창우(22)·김민수(25·군입대) 등 스타의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 KPGA가 스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들도 적잖다. 한 골프 관계자는 “선수 경쟁력이 약하다고 불평하기 앞서 협회는 먼저 협회의 경쟁력을 돌아봐야 한다. 코리안 투어 홈페이지는 선수 자료 하나 보기도 상당히 불편하다. 소비자가 아니라 공급자 위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1일 코리안 투어의 홈페이지에는 지난해 동부화재 오픈 우승자 등에 대한 소개도 나와 있었지만 프로 테스트, 선수 세미나 등 팬이 아니라 선수를 위한 내용들도 많았다. 협회는 회장 자리를 둘러싸고 여러 차례 내분을 겪었다. 남자골퍼를 후원하는 한 용품사 직원은 “KPGA 직원은 공무원 같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남자 프로골퍼들을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프로님’이라고 여기는 팬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남자 대회의 프로암에 참가한 사람들은 "남자 선수들은 자신이 프로라고 거만하게 행동한다.매너도 거칠다"고 지적한다. 파란잔디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골프팬은 JTBC 골프 홈페이지에 댓글을 달면서 “선수로 나온 아저씨들이 '칸트리 구락부' 스타일의 스윙을 한다. 그런 선수들이 무엇 때문에 물갈이가 되지 않고 오래도록 버티는지….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하지 못한 남자 골프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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