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바퀴에 크리스탈 장식 단 '패션 자동차' 보여줬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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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참 예쁘네요."

"회장님도 무척 잘생기셨어요."

지난달 말 한국을 찾은 르노.닛산 그룹의 카를로스 곤 회장은 민아영(23.홍익대 산업디자인과 4년.사진)씨의 말에 웃음보를 터뜨렸다고 한다. 아마'감사합니다'쯤의 의례적인 답변을 예상하지 않았을까.

민씨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닛산자동차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재학생 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산학협동 프로젝트에서 최우수 학생으로 선발됐다. 덕분에 내년 4월부터 도쿄 인근 닛산디자인센터에서 정식 디자이너로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이 특별한 신입사원을 위해 곤 회장이 방한해 직접 취업증명서를 전달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형 고급차'의 모델을 디자인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민씨는 튀는 용모와 언행 만큼이나 튀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자동차 바퀴에 화려한 크리스탈 장식을 달고, 차 앞쪽의 그릴과 램프를 마치 고양이 눈처럼 디자인했다. "여성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형상화했다"는 설명이다.

"제가 원래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이었거든요. 솔직히 다른 친구들보다 차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 '차 같지 않은 차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고급차 소비자 중 여성의 비중이 늘고 있고, 이들은 차를 패션의 연장으로 여긴다는 시장조사 결과가 민씨에게 힘을 실어줬다. 강의와 심사를 맡은 닛산의 디자이너들도 차의 고정관념을 깨는 그의 독특한 디자인을 높이 샀다.

닛산의 산학협동 프로젝트는 재능있는 신예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동시에 차세대 소비자들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내 몇몇 대학에서 실시됐고 외국 대학 중엔 홍익대가 처음이다. 닛산 본사에 있는 홍익대 출신 디자이너 일곱 명의 활약상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민씨는 "선배님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제가 날름 받아먹은 셈"이라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여동생(홍익대 조소과 3년)과 경쟁하듯 그림을 그려댔다는 그는 디자인 외에 노래하고 춤추기, 옷 만들기, 사진 찍기와 찍히기도 좋아한다고 했다. 밤샘 작업을 하다가도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홍대앞 클럽으로 달려가 두 시간쯤 신나게 놀다온단다.

"잘 노는 것도 공부예요. 제 안에 있는 걸 끄집어내는 게 바로 디자인이니까요."

요즘 일본어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민씨는 "앞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디자이너가 될테니 두고 보라"고 했다. 그의 끼와 자신감은 이미 놀라움, 그 이상이었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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