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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챔피언에 보내는 갈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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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답은 역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창선(레슬링).이에리사(탁구).이옥성(복싱).장미란(역도).남현희(펜싱) 등의 공통점은?

-답은 역대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그렇다면 심권호(레슬링).이원희(유도).윤미진(양궁) 등의 공통점은?

-답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를 동시에 제패한 선수다.

아마추어 운동선수들의 제일 큰 소망은 태극마크를 다는 것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움켜쥘 수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국가대항 성격의 종합 대회다. '스포츠맨십'에 따른 정정당당한 대결, '참가에 의의'를 두고, 거의 모든 나라가 참가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국가가 금메달을 많이 따느냐 하는 국가 경쟁의 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림픽에는 국가에서 대대적으로 지원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수에겐 국가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로 큰 보상이 따른다.

세계선수권은 개인 대항 성격이다. 물론 월드컵 축구 같은 구기종목은 국가대항 성격이 짙지만 대부분 종목의 세계선수권대회는 그 종목의 세계 최고를 가리는 대회다. 상대적으로 국가의 관심과 지원이 덜한 편이다. 보상도 약하다.

예를 들어 올림픽은 동메달까지 병역 면제 혜택을 주지만 세계선수권은 우승을 해도 병역 면제를 받지 못한다. 연금도 올림픽이 훨씬 많다. 올림픽은 4년마다 열리고, 세계선수권은 매년 또는 2년마다 열린다는 점이 감안이 됐지만 대회 성격의 탓도 크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는 '올림픽 골드메달리스트'이며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선수에게만 '월드 챔피언'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개인으로 보면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힘든 것이 세계선수권 제패다. 올림픽에는 국가별 쿼터가 있어 약한 선수와 붙는 경우도 많지만 세계선수권에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모두 출전한다.

최근 한국 선수들의 세계선수권 제패 소식이 잇따랐다. 복싱의 이옥성, 여자역도의 장미란, 그리고 펜싱 여자플뢰레 단체의 남현희.서미정.정길옥.이혜선 선수들이다. 장미란 외에는 평소에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선수들이다. 특히 이들이 '마이너 종목'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월드 챔피언' 등극 소식에 너무나 기뻐했다. 지원도 별로 받지 못하고, 언론의 관심 밖에 있으면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미국 이민자나 유학생 사이에 '픽업 서비스'라는 말이 있다. 처음 미국 땅을 밟을 때 공항에 누가 마중 나오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술과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왔다면 그쪽에서 놀 가능성이 크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나왔다면 공부를, 신앙이 좋은 사람이 나왔다면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세계에서도 '픽업 서비스'가 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학생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어떤 선생님 눈에 먼저 띄었느냐에 따라 종목이 달라진다. 축구 코치냐, 육상 코치냐, 핸드볼 코치냐에 따라 평생의 종목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간에 종목을 바꾸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마이너 종목'의 뛰어난 선수들을 볼 때마다 '저 선수가 만일 야구를 했다면, 축구를 했다면, 농구를 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안타까움이다. 하지만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있기에 다양한 스포츠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 갈채를 보낸다.

손장환 스포츠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