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소설」에 밀려나는 「통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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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조세희씨의 『시간여행』,이청준씨의『제3의 현장』,이인성씨의『낯선 시간 속으로』,강석경씨의『밤과 요람』,김원일씨의『환멸을 찾아서』,김원우씨의『인생공부』,윤후명씨의『돈황의 사랑』등 문학성 높은 이른바 본격 소설들이 베스트셀러로 기록되는 현상이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이와 함께 수년간 우리 소설계를 휘어잡았던 통속화된 대중소설들이 베스트셀러의 하위권을 맴돌거나 사라져가고 있다.
평론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독자층의 통속소설에 대한 식상 ▲일종의 동면 내지는 휴지상태를 보였던 작가들의 의식이 다시 날카로워져 본격소설이 많이 나오게 된 것 등에서 찾고있다.
여기에다 지금까지 통속화한 대중소설에 대해 우려는 보였지만 비판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문학평론가들이 대중문화의 타락이라는 큰 현상 속의 하나로 이들 소설에 대한 비판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80년대 초 우리 소설계는 작가나 독자들이 받은 충격으로 인한 의식의 분열상태에서 통속적인 소설이 활개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가 최근에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독자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작품들이 쏟아 졌다. 사회 현실에 대한 눈을 흐리게 하고 허위의 만족을 배급했던 것이다.
최근 본격소설이 독자들에게서 찾아지고 있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독자층이 의식의 혼란상태에 있지 않음을 증명해 주는 일이다. 독자들은 이 같은 소설들이 보여주는 세계가 우리의 현실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보고있다.
작가 쪽 에서도 정신적 위축상태를 벗어나고 있다. 조세희씨의『시간여행』,근간인 송기원씨의『다시 월문리 에서』등에서 보이는 것은 현실에 대한 치열한 접근과 대결 의식이다. 수년간 소설문학에서 결여되었던 사회적 감촉을 다시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위축되었던 작가정신이 다시 예리한 촉각을 내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70년대의 건강한 리얼리즘이 되살아나고 소설문학의 다양한 깊이가 생겨나는 것을 예감케 한다.
평론가들도 활발하다. 유종호, 권영만, 김종철씨 등 많은 평론가가 통속문학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권영민씨는 『80년대 적 속성과 그 전망-통속화 현상에 대한 소견』 이라는 글에서 『70년대는 한시대의 상황과 그 시대에 대응하는 문학의 형식이 가장 결렬하게 마주친 시대이며 문학의 창조적 열기가 사회 각 계층에 상당한 반영을 불러 일으켰다.』고 말하면서『80년대에 들어와 작가의 비판적 시선을 통속적으로 변용 시키는 일부의 작태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권씨는 『진정한 문학은 삶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독자대중을 깨우는 것』이라면서『독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대중화된 통속문학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 서서 책임 있는 도덕적 존재로서 행동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진정한 문학으로서의 소설이 대두되는 것을 예감한다고 말했다.
우리 소설계는 수년동안 크게 활기를 띠지 못했다. 또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많지 못했다.
그러나 그러한 침체 상태는 독자의 요구와 작가들의 새로운「자기확립의 노력」으로 극복 되어가고 있다.<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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