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할머니가 유아원 교사로 어린이 정서순화에 큰 도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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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유아원 교사로 나섰다. 정식교사는 아니고 일종의 무보수 초빙 『옛날옛적 어떤 마을에 엄마 아빠와 오누이가 살고 있었는데….』 김영옥할머니 (60) 가 구수한 목소리로 호랑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조금 전 까지만 해도북새통을 이루던 유아원은 금새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 그때 마침 읍내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잠자고 있는 호랑이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돌로 힘껏 내리치자 그만 호랑이는 죽고 말았습니다』이야기가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린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지른다.
서울 장안 2동 새마을 유아원(원장 이윤숙)은 지난달 29일 신학기를 맞아 처음으로 할머니 교사와의 시간을 마련했다.
이 유아원에서 할머니강사 초빙을 계획한 것은 작년부터. 평소 노인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원장 (동덕여대교수)이 전통 문화 전달자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노인들을 유아교육 장으로 끌어냄으로써 어린이 교육에도 보탬이 될뿐 아니라 노인들 스스로에게도 보람을 찾게 할 수 있다는 착상에서 비롯된 것. 지난 2월 시범 케이스로 할머니 한 분을 모셔다 얘기시간을 가져본 결과 반응이 좋아 신학기부터 월1회로 할머니교사와의 시간을 갖도록한 것이다.
이 유아원 김상희원감은 『약 한달간 젊은 교사들과만 지내다가 할머니들과 시간을 갖게돼 원생들이 신기해하고 줄거워하는 것 같다』고 들려준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를 생각하느라 밤잠까지 설쳤다는 김영옥할머니는 『유아교육 전공자가 아니어서 두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어린이들과 함께 뛰놀면서 완전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며 흐믓해 했다. 내외만 함께 살고 있다는 우 선여사 (54)는 『어린이와 함께 지내는 것이 습관이 안 돼 어색한 기분이 들었으나 어린이들이 쉽게 따라 금새 친숙해질 수 있었다』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나이가 들어서도 무엇인가를 계속 하고싶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모처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고 기뻐했다.
이광숙원장은 『현대의 핵가족 시대에서는 과거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닌 구수한 분위기에젖을 기회가 적다』고 지적하고 『이 같은 분위기를 유아원에서라도 맛보게 하면 어린이 정서순화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같이 정기적은 아니지만 노인정과 유아원을 연결시켜 사회 학습장으로 활용하는 곳도 있다.
서울 구로 4동 새마을유아원(원장 최명자) 이 바로 그런 곳 .작년12월 할아버지·할머니·손자·손녀 합동잔치를 연 것을 계기로 구로 4동 노인정과 유대를 맺은 이 유아원은 부정기적으로 원생들이 노인정을 방문하기도 하고 노인들을 유아원에 초빙하기도 한다.
최원장은 『학기초에 인사교육의 실습장으로 노인정을 활용한 결과 집에서도 할아버지·할머니에 대한 공경심이 높아지는 등 경로 사상까지 함께 길러주는 효과를 얻고 있다』 고 말했다.
노인과 유아원을 연결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아직 일부에서만 시도되고 있으나 두 소외 계층의 연결로 인한 사회적·교육적 효과가 커 앞으로 점차 확산될것 같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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