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배우의 납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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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외에서 각각 행방불명 됐던 신상옥-최은희 두 영화인이 북한공작원에 강제납치되어 지금 평양에 있다는 정부발표는 우리겨레에 또 하나의 큰 충격이다.
아무리 잔악무도한 공산도배라한들 인간으로서, 같은 동포로서 어찌 그럴수가 있겠는가.
순수한 대중예술영화만을 제작해온 그들에게 북한공산체제를 미화하고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영화를 제작케하여 대외선전용으로 하고 있다니 더구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6년전 홍콩에 갔던 최은희씨가 실종됐다는 소식에 접했을 때 우리는 북한의 소행일 것이라고 단정했었다. 그 후 일본 동경에 있던 신상옥씨가 잠적했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뚜렷한 중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후 사정으로 보아 평양집단이 아니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막연한 추측이었다. 우리는 그럽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추측이 사실과 다르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더구나 그것이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한층 경악케 했다.
교육을 못받고 어려서부터 공산주의 과격파운동을 벌여온 김일성이 동족상잔의 무력도발을 벌인다는 것은 비극이긴 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김정일만은 다르리라고 우리는 기대 했었다. 비교적 안정된 시기에 태어나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성장하면서 비록 공산세계 교육이긴 하지만 제대로 학교교육을 받아 어쩌면 그는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그의 책임하에 진행된 행동을 보면 김일성의 비행을 무색하게할 정도다.
버마사건을 비곳하여 최근의 북괴도발은 모두 김정일의 지시하에 이루어진 것 들이다.
더우기 그런자가 김일성의 후계자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남북관계나 남북대화를 어둡게 할 요인이기도 하다.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평양당국은 빨리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인격과 관행을 익혀 남부끄럽지 않은 행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문명사회에 존재하는 공권력으로서 모든 것을 정정당당히 공인적인 자세가 아니라 비밀과 음모에 의한 공작으로만 해결하려는 근성을 버려야 한다.
아무리 외화가 궁하다한들 재외공관원을 시켜 마약과 주류을 밀매케하고 테러를 일삼는 일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안에서는 비록 우리가 남북으로 갈려 있지만 밖에서 보면 우리는 똑 같은 「코리언」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북의 잘못은 남의 잘못으로 인정되고 남의 갈못 또한 북에 그 화가 미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족적 자존심을 수호키 위해서라도 평얀측은 빨리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더불어 상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먼저 신-최 두 연예인의 납북을 시인, 사과하고 그들의 가족과 친척이 기다리고 있는 가정으로 즉시 돌려보냄으로써 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홍콩당국에 대해서도 외국인의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바이다. 엄연한 주권과 공권력을 보유한 홍콩에서 어찌 외국공작원이 활개를 치며 강제 납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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