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가뭄"...파리 날리는 수산업계 부산|자갈치시장 횟집도 한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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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나라 연근 해에「고기가뭄」이 계속돼 국내최대 어항인 부산 수산업계가 심한 타격을 받고있다.
부산의 밀물 자갈치시장엔 올 들어 고기가뭄으로 자갈소리 요란할 정도로 북적댄다는 명성이 퇴색된 느낌이다. 지난7O년 3층 건물을 지어 들어선 자갈치 시장의 횟집이 운집한 2층 점포에는 때아닌 파리만 날리고 있다. 가게마다 아무런 구획선도 없이 어우러져 있는 이곳 횟집들은 모두 몇 개소나 되지만 요즘은 저녁서간에도 손님은 통틀어 4백 명 정도도 채 안 된다.
자갈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입으로 1·4후퇴 때 월남해 이 시장에서만 31년간 회 장사를 하고있는 박창숙씨(59·여·부산남포동5가66)는『이렇게 손님이 없기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본 후꾸오까 방송(FBS)이 오는5월15,16일 자갈치시장에 대해 인공위성을 통해 생방송 중계를 계획하고 있을 만큼 외국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시장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정이 크게 바뀌고 있다. 이는 고기가뭄으로 횟 값이 엄청나게 뛰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횟감으로 쓰이는 활어는 방어·돔·농어·광어·아나고 등. 이들은 제주(추자)·거제 앞 바다에서 양식된 것과4∼5t의 소형선박들이 부산 앞 바다에서 잡아오는 것들이다.
그런데 올들어 구정이후 이들 고기 값이 일제히 2∼3배 가량 뛰어 가장 인기품목인 광어의 경우 마리당 1만5천 원하던게 2만5천 원은 주어야 회를 먹을 수 있다. 활어가 이처럼 비싸진 것은 어획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
올 겨울 유난히 날씨가 추웠고 비가 적어 활어가 바다 깊숙이 잠적해 버렸다는 이곳 상인들의 분석이다.
이 같은 불황의 그림자는 전국어류유통량의 30%정도를 처리하고있는 국내최대 수산물 위판장인 부산공동어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돈을 건진다고 해서 최근엔「부세」란 글자로 표기까지 하는 부세는 매년12월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 고등어 잡이 인 선망어선에 의해 잡히고 있으며 이3개월간의 어획실적이 한해의 어획성과가 된다. 그런데 올 어기에는 48통의 선박이 5천2백24t을 잡아 1백56억6천2백 만원의 위판고를 올렸으나 지난해 어기의 1만1천1백59t,2백19억2천9백 만원에 비해 물량은 53.2%,금액은 28.6%가 떨어졌다.
이 같이 어획량이 작년에 비해 절반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조기의 경우도 마찬가지. 2∼3년 전 상자 당 2만8천 원하던 조기 값이 올 들어 5만8천 원으로 크게 뛰었다. 반면 kg당 2천 원도 채 안되며 사료용으로 주로 쓰이는 정어리는 82년 3백50만 상자에서 작년 6백60만 상자로 그 어획량이 크게 뛰었다.
정어리의 어획량이 늘어나는데 대해 선망수산업협동조합의 최준오씨(새마을 지도과)는 『고급 어종은 잡히지 않고 그렇다고 배를 놀릴 수도 없어 채산성도 없는 정어리만 잡고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3백여 개의 선방업체 중 이미 2%정도가 올 들어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다.
또 이 같은 불황의 여파로 어선에 식수·유류·선구류 등 식용품과 선용품을 납품하거나 청소업 등을 하는 항계내업자들이 물건값을 납품 후 1년 이상 걸린 끝에 받게되는 바람에 경영난에 시달여 장시간 체임을 하는가 하면 도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부산 남항에서 항계내업을 하는 부산 항업 협회소속 20개 업체 중 10개 업체가 최근 빚에 쪼들리다 못해 도산하거나 도산 직전이라고 업계 측은 말하고 있다.
부산수산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은 한마디로 고기가 잘 안 잡혀 빚어내고 있는 현상이다.
왜 고기가 안 잡히는지 그 이유는 다분히 복합적이다.
부산에 있는 수산진흥원 측은 ▲올 겨울이 예년에 비해 추위가 오래 계속되고 비가 적었던 기상의 요인 ▲70년대 중반이후 어선의 대형화, 장비의 현대화로 어획능력이 크게 증가, 집중적인 어획이 이루어져 어 자원이 크게 감소한 점을 들고있다.
따라서 예전에는 배로1,2시간 정도의 근해에서 조업을 하던 어선이 새 어장을 찾아 4∼5시간 걸리는 먼바다로 나가야 고기를 잡을 수 있으므로 그만큼 출어 경비가 많이 드는 정도 고기 값을 오르게 하는 요인의 하나가 되고있다.
연근 해에서의「고기가뭄」은 한편으론 조업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어 업계의 채산성을 날로 악화시켜 불황을 가속화시키고있는 형편이다.
「고기가뭄」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그 동안에 누적되어 온 무계획한 남획으로 빚어진 고기고갈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수산진흥원의 봉영수씨(지도과)는『장기적 안목에서 수산업불황에 대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며『이 같은 방안의 하나로 현재 충무 앞 바다에서 실시하고있는 방어양식처럼 연근 해의 양식을 점자 늘려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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