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게 둬라" 민통선 독수리 "먹이 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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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우려 때문에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등에서 월동하는 세계적 희귀조류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호)가 올 겨울 수난을 당하고 있다. AI 바이러스 유입을 우려, 철새와의 접촉을 차단한다는 이유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독수리 보호를 위한 먹이주기 활동을 중단키로 했기 때문이다.

장단반도의 독수리 월동지는 2001년 12월 임진강 유역에서 독수리가 먹이 부족으로 떼죽음 당한 직후 문화재청과 파주시.한국조류보호협회가 함께 조성했다. 매년 겨울이면 600~1000여 마리의 독수리가 몽골 등지에서 이곳으로 날아와 월동하며 그동안 당국은 닭고기.돼지고기 등 먹이주기 활동을 벌여 왔다.

하지만 당국은 올해 AI 확산을 우려해 먹이주기 지원을 취소했다. 파주시는 "독수리로 인해 AI바이러스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방역 당국의 우려에 따라 올해 조류보호협회 측에 지원키로 애초 계획한 독수리 먹이구입 비용 2000만원의 예산 집행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6일 밝혔다.

시는 또 민통선으로 들어가는 통일대교 등 여덟 곳에 '철새도래지 출입 자제'라고 쓴 안내판을 내걸고 주민과 관광객의 출입을 자제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지역주민에게는 독수리 먹이 주기 행사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한국조류보호협회는 올해 장단반도에는 10월 말부터 현재까지 600여 마리의 독수리가 찾아와 월동하고 있으며 이달 말께면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독수리의 3분의 2 정도인 1000여 마리가 몰려들 것으로 본다. 협회는 장단반도 일대에서 1997년 2월부터 해마다 먹이 부족으로 10~30여 마리의 독수리가 굶어죽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먹이 부족으로 탈진해 쓰러진 뒤 환경활동가들에게 구조돼 회복된 독수리는 매년 50여 마리에 이른다는 것이다.

한갑수(52)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장은 "독수리 떼 보호에 대한 당국의 지원과 관심이 끊긴 만큼 가뜩이나 매년 먹이 부족으로 곤욕을 치러온 장단반도 독수리 떼가 올해는 집단 아사 위기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지회장은 "먹이 부족으로 세계적으로 3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독수리가 올겨울 한반도에서 떼죽음 당할 경우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성만(59) 한국조류보호협회장은 "독수리는 무리 지어 한 지역에서 살며 죽은 동물의 고기만 먹기 때문에 민통선 내 월동지에서 먹이 주기 활동을 벌이는 것이 오히려 독수리를 민통선 밖 민가 쪽으로 가지 않게 잡아두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단반도의 경우 일반인 출입이 힘든 민통선 안이고 민가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 먹이 주기 등 보호활동을 벌여도 AI 유입을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협회는 독수리 떼의 집단 아사를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먹이 주기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파주=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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