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보선언』을 보고 안병섭 (영화평론가·서울예전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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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장호감독외『바보선언』은 일종의 회화적인 작품이다.
국민학생이 책을 읽는 듯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여 20세기 말엽에 있었던 이야기라는 단서가 붙고 있다.
떠돌이 인생, 바보같은 두 남자 동칠(이명곤분)과 육덕(이회성분)이가 창녀 해임(이보희분)과 어울리며 엮는 저변인생의 에피소드다. 동칠과 혜영은 처음 만나 각각 상류사회에 대한 백일몽을 꾸지만 그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생활에 쫓겨 헤어진 뒤 다시 만난 곳은 풀이 있는 상류사회의 활란한 파티장이다. 두 바보는 웨이터가 되었고 혜영은 상류사회 젊은이의 파트너로 나타난다.
내레이션은 바보인 동칠과 육덕이 같은 훌륭한 조상이 있어 우리나라는 행복합니다로 끝맺는다.
코믹하고 때에 따라서는 의식적으로 장난기가 있는 듯한 즉흥 연출의 일면도 있지만『바람불어 좋은 날』이래 한국인의 아이멘티티를 저변인생에서 찾으려는 이감독의 집념이 알레고릭하게 집약된 작품이다.
이감독은 대뷔작 『별들의 고향』에서부터 흥행감각에 예민했고, 그후『어제 내린비』를 제외하고는 저조한 작품들을 내놓다가 한동안 침묵기간을 거친 뒤『바람불어…』에서부터 저변인생의 우정이나 휴머니즘이 강한 사회의식을 갖고 투시했다. 그후 이동필을 만나『어둠의 자식들』『과부춤』, 그리고 이 작품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장호에게는 흥행적인 요소를 의식하는 일면과 후육의 사회의식이라는 두 요소가 함께 하고 있는데, 『어둠…』경우 그 두 요소가 어설프게 얽혔고 『과부춤』은 지리멸렬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후자의 계열이 하나의 집념으로 일관된 세계를 가지려는 작가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인데 비해 아직도 형식미에 있어 문제가 따른다.
생경함과 때에 따라 속기어린 장면의 파편이 따라다녀 매끈하고 세련된 감각이 결여되고 있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그러는 일면도 있다.
이식이 앞서가고 있는 것은『바보선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영화감독이 고층빌딩에서 투신자살하고 신문지가 떨어지는 설정은 시대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감독은 저변인생에서 진한 애정과 삶의 진실한 또 하나의 모습을 발견해 이를 부각시키고, 사회의식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려면 영화적 구성과 형식미의 추구도 의식 못지핞게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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