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습관성 집착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9호 35면

3월은 추운 겨울 남쪽으로 떠났던 제비가 다시 돌아오는 달. 제비가 처마 밑에 오기 전 서둘러 집안을 깨끗하게 하고 또 뒤란도 대 빗자루로 청소하고 대문 앞도 깨끗이 한다.

새봄 인사로 미술관에서 박물관으로 떠나게 되서, 책상서랍이며 책꽂이를 정리해 분리수거했다. 종이는 종이대로 잡동사니는 그것대로 또 쓸데없이 쌓아놓은 허접은 또 허접대로 다들 갈 길이 있었다. 어느 정도 정리를 하니 기분이 상쾌했다. 선배 말마따나 ‘나이 40이 되면 스스로 정리’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

대학시절 모시던 스승이 계셨는데, 한 말씀 한 말씀 들을 때마다 몽골 거친 망아지 같던 내 삶의 모습도 좀더 성숙해졌다. 스승님께서 어느 늦은 밤 이런 말씀을 하셨다. “수행자가 집을 나설 때는 반드시 옷장이나 쓰레기통을 다 비우고 책상서랍 볼펜 한 자루도 제자리에 놓고 떠나라. 도(道)를 일구는 사람은 그 앉은 자리가 따뜻할 때까지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나그네임을 명심하라.” 그 말씀을 받들고 새긴 지 어느새 30년이 흘렀다. 무겁고 어설픈 내 삶의 습관도 그 후론 집을 나설 때면 비워놓고 텅 비게 한 후 문을 잠그고 나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서랍을 정리하며 느낀 건 ‘습관성 집착’이 무섭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단 일 년만 무심해도 주변에는 이것저것 발효되지 않는 음식물처럼 물건이 쌓인다. 사기도 하고 얻기도 한 것들이었는데, 지나고 보면 결국 살고 있는 공간이 집착으로 가득한 모양새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리를 어느 정도 한 후 옆 건물 직원선생하고 차담을 했다. “나이 50이 넘으면 세 개면 두 개로, 두 개면 하나로 줄이는 게 참 좋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그러게요, 다 정리를 할 수는 있는데 죽음에 대한 정리는 잘 안될 것 같습니다”라고 한다. 뜻밖에 도인을 만나 공부는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에겐 두 종류의 삶이 있다. 끝없이 늘어놓고 자랑하며 사는 삶과 끝없이 정리하고 단순하게 사는 삶이다. 흔적 없이 사는 사람은 마음도 가볍고 몸도 가볍다. 마음이 몸을 끌도 다니기 때문에 오늘도 내 영혼은 육신을 아쉽게 끌고 다닌다.

지난주 초봄 새싹이 돋기도 전 뒷산 넘어 일주일간 스스로 정진의 결제시간을 시간을 가졌다. 교무 대적공 정진(大積功 精進)훈련이다. 달이 휘영청하게 뜬 결제 날. 저녁을 먹고 달빛 속 언덕을 넘어 겨우내 떠나지 못한 낙엽 숲길을 걸어 바스락 바스락 스승님들의 묘지 앞에서 합장을 했다. 달그림자가 앞서고 나는 뒤서는 돌아오는 길, 다람쥐도 없는 참나무 길의 밤은 꼭 내 자신의 모습 같았다. 도를 일구는 일도 결국은 스스로 정리하며 사는 일이고 생로병사에서 의례처럼 다가오는 죽음도 내가 정리가 된 마음이라야 편안하게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나의 다짐은 단 한 가지다. 그동안 신문으로 접했던 국가 대소사의 불편함이나 우리 교단에 대해 분별을 했던 일들, 또 사람들 말을 따라 함께 흉을 보았던 일들의 죄를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스스로 내린 처방은 “입으로 공덕을 짓자. 그리고 마음으로 기도하자”다. 늘 만나는 사람뿐 아니라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는 게 그동안 내 입이 지은 죄를 사면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눈을 떴다 감으면 10년씩 흘러가는 찰나의 시간에서 내가 변하지 않으면 결국 허상의 껍질인 채 살 수밖에 없다. 진달래 꽃 피기 전에 내 가슴도 붉게 변하여 이름 없는 산에 피고 싶다.



정은광 원광대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