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서|강인한기상의 한국여성, 우리사회가 「복부인」만들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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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전통적으로 한국의 여성은 사랑받기전에 먼저 주고, 개척하고 혁신하는 적극적 위상을 보여왔다. 눈바람속에서도 의연히 꽃피는 동백이나 설죽, 설송의 기상이 곧 한국의 여성상이었
다.
「솔이 솔이라커니 무슨 솔만 여기는는다 천인절벽에 낙락장송 내 기로다 길아래 초동의 접낫이야 걸어볼줄 있으랴.」
이 낙락장송의 기상, 곧 한국여성의 것이리라.
태고적 웅녀가 보여준 적극성과 강인한 지구력을 비롯하여 부모 허락없이 해모수와 통정하여 임신하고도 금와의 왕비가괸 유화의 기혼, 그리고서도 아들을 건국시조로 키워낸 입지,
부왕의 허락은 고사하고 타국왕 주몽에게 달려가 구혼한 해부루국의 두공주.
이들의 적극적 기질을 물려받아 고구려의 여성들은 말을타고 활을 쏘며 크고 넓은 기상을 키웠고, 신라에선 명산경개를 유람하는 여화랑의 활달한 기량을 키웠다.
왕명을 무시하고 신분을 뛰어넘어 온달과 결혼한 평강공주의 도량, 바보를 당대 제일의 장군으로 키워낸 자수성가의 기품이 한국여성의 것이다. 이렁 기상은 백제·고려나 조선에
서도 맥맥히 이어졌다.
가문을 일으키고 지켜온 내당마님의 기상을 보라. 그토록 잦은 외침과 못난 남성들의 사움질 난동기를 살아오면서도 충녀·열녀·의녀·효부로서 보여준 기백을 보라.
허벅다리 살을 베어 지아비의 병을 고치고, 손가락을 개물어 시부모를 살려내고, 막노동을불사하면서 남편공부 뒷바라지하여 과거에 급제시킨 수많은 사례들이 바로 한국여성의 기상
을 담고있지 않은가. 이런 기상·기량과 기귀, 기품과 기질은 위로 왕녀에게서 무녀·의녀·아낙에 이르기까지 신분이나 계급과 관계없이 사회의 제도적 억압·모순에서도 줄기차게 이
어져 단신 월남하여 생선장사를 하면서도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억척스런 교육열도 나타나지 않았는가.
우리여성의 이 깊고 넓은 기량을 오늘의 우리사회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직종에 따라 여성의 정년을 30,40,50대로 잘라버린 옹졸한 처사는 과거도 미래도 못보는 단견의
발로가 아닌지. 우리의 조모·모친들로부터 이어내려온 한국여성의 기량은 며칠동안 반짝웃는 꽃이 아니라 1백년을 살고나니 마지막에서야 꽃이 피는 참대나무나, 동량의 재목이 되
는 낙락장송의 그것이다.
그러므로 적절히 사용될대는 참으로 큰공헌을 한수있었으나 잘못버려두면 복부인이나 어부인으로 절환될수도 있었다.
지금 우리의 여성들은 전문직에서나 단순 노동직에서나 얼마나 눈부신 역량을 발휘해오고있는가를 이미 주변에서 우리는 보아왔고 들어왔다.
젊다는 것은 곧 서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 한국여성의 기상을 물려받았고, 훌륭히교육도 받은 여성들이 자기직업에서 쌓은 경험과 나이에서 얻은 경륜까지 겸비한다면 얼마
나 값진 인적자원이 되겠는가.
게다가 여성은 남성보다 적용력이 강하고 심지 또한 그러하다. 한국여성이 더욱 그러하다.
이 모든 근거에서 한국여성의 정년은 오히려 남성보다 한 20년은 더 연장되어야 옳을 것이다.
이 점이 개선되지 않으면 가까운 우리장래에는 반드시 여성혁명을 겪게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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