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범없이 1심 마무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동」사건이 21일로 1차적 사법판단을 마무리지었다.
이로써 이사건 관련 피고인 29명은 지난해 10월24일 기소된지 1백20일만에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았고 잇따라 터진 대형금융사고의 막이 내렸다.
이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양형선택에 있어 해외로 도피한 곽경배(37·전도진실업대표)·박종기(45·전조여은행중앙지점차장)·손창선(44·전신한주철대표)등 3명의 주범이 함께 기소된 경우를 가정, 다른 피고인에게 법정최고령을 피했다는점에서 의의를 찾을수있다.
사실 이번사건은 처음부터 이들 3명에 의해 이뤄졌으며 부정지급어음발행과 부정편타등 범행을 주도하다 사건발생직전 모두 해외로 달아나버렸다.
재판부는 주범들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피고인이 불이익을 보아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동측의 곽경배가 기소됐다면 곽근배피고인에게 최고형을 지울수 없고 조여은행의 박종기차장이 검거됐다면 고준호피고인에게 최고형을 선고할수는 없다는것.
또 관련 은행직원 18명 모두에게 실형을 선고한것은 금융계의 고질병인 부정편타등 금융부정에 철퇴를 가하고, 국민경제적측면에서 고도의 윤리성을 요구한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가 이들 은행원들의 어음부정지급보증등 배임액수보다 뇌물액수에 비중을 두어 판단한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방조범으로 기소된 서상렬·이택구피고인등 두지점장에게 범행에 직접가담한 하급 행원보다 중형을 선고한것도 주목할일.
지난해 꼬리를 문 금융사고에 대한 「국민재산의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다하라」 는 경고적 의미도 포함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헌승피고인에 대한 중형선고도 그 궤를 같이 하고있다.
또 상사의 지시에 따른 어쩔수 없었던 일이라고 주장했던 이복례피고인의 여비서들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한 것은 이들이 「하수인」의 역할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가 조흥은행 중앙지점을 떠난뒤 영동으로부터 받은 일부 은행원들의 금품에 대해서도 뇌물로 본것은 새로운 해석.
종전에는 직책을 떠난뒤에 받은 금품은 직무와 관련된 뇌물로 볼수없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동경지법은 지난해 다나까(전중) 전수상의 「록히드」사건 판결에서 『직책을 떠난뒤에 받은 금품이라 하더라도 본래의 업무와 관련있는 뇌물』이라고 판단했었다. <신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