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싹수 노란' 국민연금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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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은 '당리당략과 정파의 이해관계를 넘어 백년대계를 도모한다''특위 활동기한(내년 2월 말) 내에 처리 방안을 기필코 마련한다'는 자못 웅대한 각오를 담을 예정이었다. 지난주 여야 간사가 문안 조율도 마쳤다.

그런데 돌연 야당이 반대 목소리를 높여 결국 선언문 채택이 무산되고 말았다. 특위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선언문에 별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한 내에 협상이 타결될지도 불투명한데 공연히 생색을 내지 말자"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론 열린우리당 소속인 이석현 특위 위원장이 회의가 열리기 전에 언론에 선언문을 배포한 것에 대한 불만이 아주 큰 몫을 차지했다.

야당이 '위원장에게 끌려가지 않겠다'고 반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 해보자고 공들여 만든 선언문 자체를 걷어찬 것은 '속좁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 정도에 팽하고 돌아설 것 같으면 애초 간사 합의는 뭐하러 했단 말인가.

효율적 특위 운영을 위해 여야 3인씩 운영위를 구성하자는 안건도 무산됐다. 간사 협의를 거쳐 인선까지 끝냈는데도 그랬다. 운영위에서 빠지는 비교섭단체(민주당.민노당) 의원들의 항의에 한나라당이 원점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사정을 바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간사 합의는 존중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전 합의가 깨진다면 합의는커녕 불신만 높아질 판이다. 벌써 여당에선 "야당이 도대체 협상 의지가 있는 거냐"며 얼굴을 붉힌다.

특위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안건이었던 '국민연금법 개정 쟁점 토론'조차 "이미 다 했던 얘기"라며 서면 대체로 끝냈다. 결국 특위는 다음번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한 채 끝났다. 연말연시에 바쁜 지역구 사정을 감안하면, 내년 2월까지 타협안을 내놓겠다는 대국민 선언문이 채택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일지 모르겠다.

김정하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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