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산 한라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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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3년 한햇동안 한라산을 오른 등산객은 모두13만7천3백명. 이들 등산객중 63%인 8만6천8백여명이 한라산등반 4개코스 (성판·관음사· 어승생·영실)중 어승생코스를 이용, 등산했다. 단한번 한라산을 오른다면 어느코스를 택하겠는가.
서슴지않고 나는 산천단→관음사→개미등→왕관능→정상코스로 오르겠다.
한라산의 등반로중 계곡과 능선, 숲과 벌판이 이어져 가장 아기자기하고, 정공법으로 정상에 오를수 있을뿐만 아니라 적설기의 삼각봉을 건너가는 묘미는 이루 다 표현할수 없다. 눈이 없을때는 단 10분이면 건너갈수 있는데 눈이 많이쌓였을때는 3시간이나 걸린다. 국내 유명 여자대학산악부가 예정시간에 삼각봉을 건너가지 못하여 서울에서 구조대가 내려오는 소동을 벌인것도 벌써 20여년전의 일이다
탐라계곡을 건너 개미등을 빠져 나오면 바로눈앞에 삼각봉이 보이고 한라산 최대의 북벽이 왕관능을 왼쪽에 두고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엔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누구는 「해지는 마음의고향」이라고 했던가. 아침에 산천단에서 출발하면 저녁에 용진각에 도착하게 된다. 정상공격의 전진기지로서도 용진각은 참 중요한 장소다.
4·3사건이후 한라산이 개방되어 처음 등반했던 분들은 개미등의 산죽 (제주조릿대) 이 사람키만큼이나 되었다지만 지금 개미등의 산죽은 무릎을 스칠 정도다.
헌종8년 (1842년) 가을 한라산의 산죽이 결실하였는데 모양이 밀과같고 맛은 달고 담백하여 사람들이 따다가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로부터 1백20년후인 1963년 한라산 산죽이 60년만에 결실하였다는 기록을 참고한다면 지금의 개미등 산죽은 이로부터 60년후인 2020년대에가서 결실할것인지 .
한라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은 단연 서북벽으로 탑괴, 그리고 영실로해서 중문으로 내리는길이 있으나 지금은 거의 이길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2횡단도로가 개통되면서 어승생코스로 가장 많이 다니고 있지만 정상에 이르는 약6km의 등반로는 주말이면 등산객으로 차례를 기다려야만 된다.
우리나라 산중 지리산의 세석고원이 넓다지만 선작지왓(입석전)의 고원과는 비교가 안된다.
설문대할망이 옮겼을까, 5백장군이 어머니의 한이 되어 옮겼을까, 집체만한 바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초심자가 서북풍이 몰아칠때나 안개가 끼었을때 영실로 내려가는 길을 찾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금년에도 벌써 이 코스에서 정규의 대학산악부원이 2명이나 동계훈련증 조난을 당했으니 한라산의 기상을 알지 못하고는 칼없는 장군이 적진을 돌격하는 격이된다.
김승택<제주산악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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