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 물류도시 보상금 비리 시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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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부산시 강서구에 땅을 가진 한 공무원의 부인 A씨는 2013년 자신의 땅이 산업단지 개발구역에 포함되자 마을 통장을 찾아갔다. 영농 사실을 인정받아 보상금을 받으려면 통장의 확인 도장이 필요해서다. 그는 농사를 지은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통장은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는 대신 수십만원을 요구했다. 실제 농사를 짓지 않은 A씨는 돈을 건넨 뒤 도장이 찍힌 서류로 영농보상금을 받았다.

 부산도시공사가 추진 중인 ‘부산 국제산업·물류도시’ 조성 구역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사업은 2017년까지 강서구 미음·범방·송정·녹산동 일대 567만5000㎡에 산업·물류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사업비만 2조1461억원이 든다.

 하지만 보상을 놓고 말이 많다.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을 지낸 B씨는 보상 대상 마을에 거주한 사실이 없지만 부산도시공사에서 이주민 보상금을 받았다. 가짜 서류 덕분이다. 마을 주민들은 “통장이 서류에 도장을 찍어줘 가능했다”며 “보상금은 눈 먼 돈이나 마찬가지”라고 수군거렸다.

 보상금은 토지 보상금 외에 사업구역 내 이주를 위한 ‘이주민 보상금’과 실농 농민에게 주는 ‘영농보상금’ 등이 있다. 지상건물과 농기계·조경수도 보상 대상이다.

 이 과정에서 통장 등이 힘을 발휘한다. 보상기관이 마을 사정에 밝은 통장 등을 내세워 거주·영농 여부를 확인받고 보상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도장 값’이 나온 배경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곤 한다. 부산 강서구 세신마을 일부 주민은 9일 “마을 비리에 더 이상 눈을 감을 수 없어 동장과 통장에 대한 감사청구서를 강서구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주민대표 김모(44)씨는 감사청구서에서 “보상금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는 대가로 통장이 금품을 요구한 사실이 있다”며 “마을 정관까지 수정하며 통장을 연임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주민센터에 이 사실을 알리고 진정서를 냈지만 행정기관이 묵인하고 있다”며 “수사기관에 고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강서구는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며, 경찰은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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