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했던 대로 오케스트라가 무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오케스트라와는 별도로 편성된 소악단이 무대 양쪽에서 소리를 보탰다. 놀랄 만한 것은 합창단의 숫자였다. 오케스트라 뒤편 객석을 임시로 합창단석으로 만든 곳에 서 있는 인원을 세어 보려고 했으나 바둑판의 교차점 361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객석은 꽉 찼고 음악에 대한 이해 수준도 높은 듯 좋은 연주가 나오면 박수와 환호가 터지고 밉지 않은 휘파람 소리까지 들리곤 했다.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대학 콘서트에 이토록 많은 관객이 와 연주자와 함께 호흡하며 음악을 즐기는 수준이라면 우리나라도 음악에서만큼은 선진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어 극장 밖 복도에 나왔다.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일행에게 극장 안에서 내가 느낀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1주일이 멀다 하고 클래식 연주회에 참석하는 음악 애호가가 웃으며 말했다. "저 사람들이 왜 온 것 같아? 무대에 올라간 사람들이 가족이거나 친구라서 온 거야. 아니면 우리처럼 공짜 표를 받았든가."
최근에 나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음대 졸업생이 6000명이나 배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중에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길을 가는 숫자가 얼마나 될까. 클래식 음악의 전문 연주가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비용이 들 것이다. 청소년기 내내 힘겹게 기예를 익혀야 하고 레슨까지 받아야 대학에 갈 수 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대학을 졸업해도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진짜배기 예술가라면 세속적인 가치에 연연할 필요가 없고 취직이나 밥벌이는 안 돼도 그만이다? 그럼 요새같이 모든 것이 수입과 명성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과연 누가 예술을 하려고 할까.
예술은 숫자나 경제논리로 환원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우리의 삶을 깊고 아름답게 만들고 국가와 사회의 건강성과 수준을 높인다. 그렇다면 수익자인 우리 각자가, 국가와 사회가 이런 가치를 창출하는 예술가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바탕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국가.사회의 품이 아직 거기까지 넓어지지는 못한 것 같다.
당연히 음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술.무용.문학 같은 다른 예술 분야는 물론이고 기초학문, 각광받지 못하는 모든 전문 분야가 그렇다. 이들이 일정한 과정, 그러니까 따뜻한 콘서트홀과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기껏 자신의 후배들인 중.고생들을 자신처럼 대책 없이 막막한 길을 가도록 가르치는 것뿐인가. 그 후배들은 또 자신의 후배들을 가르치면 되고?
오늘도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 게시판에는 대입 전문 레슨.과외를 한다는 광고가 여러 장 붙었다. 오징어다리처럼 갈라진 종이쪽에 적힌 전화번호가 맥없이 흔들리고 있다.
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