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독회 음향·율동 등 치밀한 연출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사행시 『귤』을 낭독하기로 된 시인 강우식씨는 노란 귤을 양손에 들고 나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강씨는 귤을 까면서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이토록 제속의 것을 다 주어버린 여자도 있는가/왕년에 귤이었다가 오늘은 껍질만 남은/마음속 일일랑 몽땅 다른 사내에게 준/끝난 여자와 앉아서 맞선을 본다』 신촌민예극장에서 열린 「현대시를 위한 실험무대」에서 강씨가 벌인 이같은 해프닝은 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어떤 시인은 『악수』라는 즉흥시를 낭독하면서 청중속으로 들어가 여인들만 골라 악수를 청했다.
시인과 관객이 즐거움속에 한덩어리가 되어 시적 감흥에 젖어드는 기쁨을 느낄수 있었다.
65년 시인 박희진씨가 자작시낭독회를 가진후 70년대말에 들어서면서 시낭독회가 부쩍 늘어나 지금은 10여개나 되고있다.
시낭독회는 독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낭독회를 열어 시인을 초청하는 것과 시인들이 시낭독동인회를 만들어 독자를 끌어들이는 두가지 형태로 「시낭」 「바우방」 등이 독자주도모임이고, 「공간시낭독회」 「승려시낭독회」 「토요일 오후와 시」 「시와 육성」 「로리수낭독회」 등이 시인들이 만든 모임이다.
시낭독회에는 보통 60∼2백여명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래서 웬만한 시낭독회는 이제 어느정도 규모와 지속성을 얻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낭독회는 아직도 독자(관객)와의 혼연일치를 통한 시적 감동을 주는데 미흡하다. 그것은 앞에 든 것과 같은 해프닝이나 여러가지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시도가 적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낭독회는 시인이 굳은 자세로 서서 낭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으로 참석한 사람들을 지루하게 한다.
지금까지 시도된 방법은 조명효과를 높인다든지, 성우나 배우가 나와 시를 낭독한다든지 하는 것이었고, 일부에서 시네포임·파노포임·합송을 하는 것이었다. 시네포임은 시감전달을 위한 상징풍경과 시인의 낭독모습을 소형영화로 제작하는 것이고 파노포임은 풍경을 슬라이드로 비추어 시낭독회의 효과를 살리는 것이다. 합송은 한편의 시를 여러 시인이 공동으로 낭독하는 것. 또 시를 작곡하여 합창단이 노래하거나 시극을 공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도 시인들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시인 김종해씨는 시낭독회가 공연의 수준에까지 이끌어 올려져야한다고 말한다. 김씨는 이를 위해 참가시인들이 모여 충분한 연습을 해야하며 나아가서는 시를 이해하는 연출자가 있어 시낭독회를 연출할수 있게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분위기를 고조시킬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음향·율동·조명 등이 치밀하게 꾸며져야 한다는 것.
외국의 경우 시낭독회는 낭독자의 톤·무대장치·무용·효과 등이 연출되고 있으며, 전위적 해프닝이 곁들여져 대규모집회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미국의 히피시인들은 격렬한 몸짓으로 기타를 치며 자작시를 노래한다. 일본의 시인들은 무용을 배경에 깔고 그 무용에 맞는 제스처로 시를 낭독한다.
참석자와의 즉석 대화도 벌인다. 시극공연도 활발하다. 이러한 모든 시도들은 독자와 호흡을 같이하여 시적 감흥을 높이려는 것이다.
80년대에 들어와 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시독자가 크게 늘어났다. 따라서 시낭독회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시낭독회의 모습이 천편일률적이어서는 독자를 더 이상 끌어들일수 없다
백주현씨(43·요식업)는 「시와 육성」모임에 지난해 10월부터 딸 난희양(16)과 함께 참석해 왔다.
백씨는 『독자시낭송 프로그램 등은 좋으나 좀더 다양한 계획이 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말했다.
친구와 함께 시낭독회를 찾은 김연숙씨(23·회사원)는 『시낭독회에 와서도 시가 어렵게만 느껴진다. 좀더 재미있게 꾸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재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