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아의 홍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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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병이 들면 한 개인의 생명에 위협이 온다. 파산하면 한 가정에 위기가 온다. 이웃나라로부터의 침략기미는 한 국가에 위기를 가져온다.
언제나 병에 걸릴수 있는 이상, 언제고 가정에 큰 풍파가 생길수 있는만큼, 언제나 딴 국가로부터 혹은 민족으로부터의 침략이 가능한 한 우리는 언제나 다소간의 위기속에서 산다.
6·25의 쓰라린 전쟁을 겪은 우리들, 분단된 이북에서의 전쟁도발의 가능성을 항상 피부로 느끼는 우리는 위기속에서 헤어나 위기속에서 살아왔으며 위기속에서 죽어갈 것만 같다.
오늘날에도 인류가 생존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그 수가 천문학적으로 확대됐다는 사실은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통해 무수한 위기를 극복해 왔음을 말한다.
그러나 누구나가 의식하고 있듯이 우리의 위기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위기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늘 우리가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는 위기는 더욱 근원적인 성격을 띠고있다.
우리가 당면한 위기는 나 개인, 우리 가정, 우리나라, 우리민족, 인류 문화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종말의 위기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오늘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다.
「인류」라고 아무리 거창하게 표현해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며 「위기」라고 심각하게 말해도 결코 과장된 수식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인류는, 아니 모든 생명체는 종멸의 위기에 당면하고 있는 것인다.
급속도의 산업화에 따라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공기가 모든 주민들의 건강에 위협을 주고 있음은 지금 이순간에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비단 인구가 집중해있는 도시뿐만이 아니다. 강물이, 바닷물이 화학적 독물로 오염되고 있다. 하루도 빼놓지 못할 음료수, 모든 음식물에 독이 들어있을 가능성을 아무도 눈감을수 없다.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생물을 위협하는 공해는 비단 산업사회에만 한해 있지 않다. 멀리 떨어진 원시림, 아프리카의 사막, 알래스카, 남북극에 이르기까지 합하여 지구 전체가 공해라는 암에 병들어가고 있음은 이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상황의 공해에 대해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21세기가 되기전에 지구는 오염에 의한 크나큰 기후적 변화가 생기게 되리라는 예측이다. 이 변화에 따라 지구가 크게 가열되고 바다에는 천문학적 증수현상이 생겨 많은 육지가 침수되고 농경이 불가능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성서에서 말하는 「노아의 홍수」를 연상시킨다.
인류가 눈앞에 당면한 위기는 비단 공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공수정이 가능하여 인간이 마치 동물처럼 마음대로 개량되고 조작되게 되었다.
생명의 근원을 물질적 차원으로 끌어내려 조작하게 됨에 따라 인위적으로 인간 아닌 가지가지 괴물을 만들어 낼수 있는 이론적·기술적인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특수한 생명체, 인간의 존엄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 것이다.
공해와 과학적 인간조작이 인류의 위기를 가져왔지만 그러나 가장 절실하고 눈앞에 부닥친 인류의 위기는 아무래도 핵전쟁의 가능성이다.
특히 최근 몇년에 걸쳐 미소간의 핵전쟁의 위험성, 아니 가능성에 대해 신문들은 매일같이 크게 언급하고 있다.
현재 미소양국이 보유하고있는 핵무기의 파괴력은 인류는 물론 지구의 모든 생명을 잿더미로 만들어 놓을수 있는 힘보다도 몇천배의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친구가 실수로 자동차 사고에 죽어도 설마 내가 그렇게 죽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집안식구가 암에 걸려 죽어도 내가 설마 암에 걸리랴 믿고싶다. 귀여운 자녀를 갖고 남달리 호강하며 삶을 즐기는 세계의 지도적 정치가들이 설마 그 끔찍한 전쟁을 자신의 가족을 죽이고 나아가서는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핵전쟁을 시작하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너무나도 자명한 자멸의 길을 그들이 어떻게 감히 택할수 있겠는가? 설마 그러한 상황을 상상이나 할수 있겠는가? 인류는 동물과는 다르다. 인류는 이성의 동물이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을 잡는 법이다. 이성을 가졌기 때문에 인류는 생존해왔을 뿐만아니라 오늘과 같이 기하학적으로 번식했고 발전했다.
불과 백년전, 아니 50년전만해도 상상조차 할수 없던 기술을 갖게되어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를 정복하게 됐다.
기술이 가져온 물질적 혜택은 현실이라기보다 꿈에 가깝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 보면 오늘의 위기, 인류가 처음으로 당면한 궁극적 위기의 원인은 인간이 개척한 기술의 결과이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 지성의 소산이라는 것을 부정할수 없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의 원인인 지성의 힘이, 기술의 힘이 오히려 인류멸망의 위협이 되게 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비극적인 역탈이 아닐수 없다.
지성, 기술적 지성은 믿을수 없다는 말이 된다. 대통령이나 장성들이 지성을 가졌다하여 신뢰될 수 없다.
한 문명이 고도의 기술을 갖추었다하여 모든 것을 기대할수 없는 것이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지성을 가진 인류는 어느 사회에서이고 치열하고 잔인하고 무의미한 전쟁과 파괴와 살생을 거듭해 왔음은 역사가 밝혀주고 있는 터다.
빈민굴에서 고아들이 굶주림과 고독과 추위에 떨면서 절망에 빠져있는 것을 눈 앞에 보고서도 환락에 빠져있는 소수가 있는 경제체제, 부모를 잘못 만나면 평생 시궁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공평한 사회, 아프리카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기아에 허덕이다 죽어가는데도 부유한 국가에서는 농산물을 의식적으로 적게 생산해야하는 인류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무력이 있으면 약소국을 마음대로 점령할수 있는 국제정치적 불의, 이러한 모든 사실은 인간의 지적 능력, 기술적 이지력은 근본적으로 신뢰할수 없음을 입증하고 있다.
인간의 지적능력만을 믿고 그 판단에만 의지한다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지적능력의 기능과 의미에 대한 그릇된 판단을 나타낼 뿐이다.
나의, 내 가족의, 내 민족의, 그리고 인류의 생존의 책임은 모든 개개인의 책임인 것이다. 인간의 가장 귀중한 무기는 지적능력, 기술적 이성이 아니라 도덕적 힘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나치게 지도자에게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또 근시안적 안목에서 눈앞의 물질적 욕망추구에만 급급하고 있다. 그만큼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지고 있다. 우리는 다같이 안이한 낙관주의를 버리고 다시한번 도덕적인 재무장을 해야한다.
박이문
▲1930년=충남아산태생 ▲57년=서울대 불문과졸 ▲64년=불소르본대 불문학박사 ▲70년=미남가주대 철학박사 ▲이대조교수(57∼61년) ▲미레스레어공대조교수(68∼70년) ▲미 시몬즈여대교수(70∼현재) ▲저서=『시와 과학』 『문학속의 철학』 『노장사상』 『인직과 실존』 『예술철학』 등 외 시집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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