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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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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톰, 저녁을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중국이나 인도 사람들은 굶고 있단다."

세계화를 다룬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로 유명한 토머스 프리드먼이 어릴 적 부모에게서 듣던 말이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그는 최근 대학 1학년과 고교 2학년인 두 자녀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애들아, 어서 숙제를 끝내거라. 중국과 인도 사람들이 너희가 원하는 일자리를 노리고 있단다." 세계가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고 주장하는, 그다운 자녀 교육법이다.

경쟁은 흔히 '시험'이란 옷을 입는다. 당락에 따라 희비가 갈리지만 인생의 성패까지 결정하는 건 아니다. 1851~64년의 짧은 기간 청(淸)과 함께 중국을 반분(半分)했던 '태평천국(太平天國)'의 탄생은 한 사람의 시험 실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홍수전(洪秀全). 총명했던 그에게 집안은 온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1843년 네 번째 도전한 과거에서도 실패하자 40일간 열병을 앓는다. 하루는 꿈속에서 한 노인에게서 악마를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라는 계시를 받는다. 기독교 서적을 읽었던 그는 꿈속의 노인을 여호와라고 확신, '상제(上帝)의 가호 아래 누구나 평등을 누리는 태평천국' 건설에 몸을 바친다.

시험에 낙방하고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는 많다. 윈스턴 처칠은 육사 시험에 두 번 떨어졌고 아돌프 히틀러 또한 미술학교 시험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1921년 미국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은 IQ 135 이상 1500명의 어린이를 상대로 성취도 조사에 착수했다. '흰개미'라고 불린 이 아이들은 뛰어난 학습능력과 높은 성공도를 과시했다. 터먼은 선천적 지능이 성공을 좌우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성급한 결론이었다. 정작 흥미로운 결과는 후속 연구를 통해 나왔다. 성공도 최고의 흰개미들과 성공도 최저의 흰개미들을 비교한 결과 이들의 IQ는 거의 동일했다. IQ와 성공 간의 상관 관계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공도가 높았던 아이들에겐 공통된 특성이 발견됐다. 확신과 끈기, 열정이었다.

23일 60만 학생이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렀다. 시험을 잘 본 학생도, 또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다. 중요한 건 시험이 끝났다고 인생이 끝난 게 아닌 것처럼 시험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가 아니란 점이다. 확신과 끈기, 그리고 열정이 살아 있는 한 인생은 희망적이다.

유상철 아시아뉴스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