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범죄·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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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명절이 가까워 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약간씩 들뜨게 마련이고 그 양상은 대충 두 가지로 나타난다. 살림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가족끼리 선물도 마련하고 일가친척을 방문하는 등 명절다운 예절을 갖춘다. 그러나 살아가기가 평소에 궁색한 사람들은 오히려 심기가 위축되고 주변이 한껏 쏠쏠해짐을 느끼게된다. 이러한 감정이 내부에서 삭여지고 단념되는 경우에는 그 나름대로 분수에 적합한 형태로 명절을 넘기겠지만 이것이 까닭 없이 울분이나 원망으로 발전할 때 무리가 따르게 되고 간혹 범죄로 발전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추석이나 세모가 되면 강·절도 같은 강력 사건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지금까지 해마다 겪는 관례이다시피 돼있다.
올해도 예외 없이 구정을 앞두고 수도권 일원에 특별 경계 방범 비상 령이 내려져 전 경찰이 비상 경계 근무에 들어갔다. 경찰은 오는 2월2일 구정까지 강도·절도·폭력 등 강력 사건의 예방에 힘쓰면서 특히 들뜬 명절 분위기를 이용하여 불순 세력이 파괴 활동을 할 가능성에 대비, 정부청사 등 국가기관과 주요 시설물의 경비를 강화하도록 했다. 경찰은 이밖에도 주택가나 금융기관·귀금속 상·시장·백화점 등에도 무장 정·사복 경찰관을 배치하여 24시간 경비한다는 것이다.
영하의 강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철야 비상 경계에 투입된 경찰관과 방법 대원들의 그 노고를 치하하고 위로하는 마음은 국민 모두에게 한결같으리란 생각이다. 그러나 그들의 경계 임무가 좀더 효과적으로 수행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범죄란 부시에 어느 장소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 구역만에 한해 예방 대책을 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활동이나 통행에 불편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노력은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모든 사람을 일단 의심하고 검색의 대상으로 삼는 방법보다는 좀더 집중적이고도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한 수사기법이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방범 비상 경계 속에서도 강력범이 횡행했던 과거의 실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최소의 병력 동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대외적인 인상이나 예산 절감이란 점에서도 긍정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당국의 무차별 검색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 몸이 좀 불편하고 행동에 일시적인 제약이 가해지더라도 이것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이해에서 적극적인 호응이 있어야 하겠다.
우리는 지난해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구정 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용한 북괴의 도발이 예상될 수도 있다. 명절을 앞문 강력범 발생이라는 예년의 관례가 되풀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대비한 국민들의 관심과 경계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일이다.
구정은 공휴일 시비와는 관계없이 아직도 엄연히 우리의 명절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구정 명절을 검소하게 보내자는 노력은 신정 연말 연시와 진배없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당국의 범죄 예방 노력과 함께 국민들 자신도 스스로의 행동에 우리가 추구하는 규범의 일탈이 없도록 해야하며, 불우한 이웃과 함께 기쁜 마음을 갖는 자세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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