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환의 배틀배틀] 게이머와 가수가 앨범 공동 작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그러나 악보를 보는 순간 우리는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음악에는 스타크래프트의 아기자기한 내용 뿐만 아니라 게임 사운드까지 공격적으로 녹아들어 있었다. 마린이 총을 쏠 때 나는 스팀팩 소리, "지이잉~척!"하는 시즈 탱크 특유의 사운드, 무지막지하게 달려드는 저글링 소리 등이 음악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눈이 동그래졌다. '자나 깨나 듣던 게임 사운드가 음악과도 궁합이 맞구나'. 그래서인지 녹음할 때도 가사와 효과음 등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녹음한 곡은 세 곡이었다. '저글링 네 마리''마린의 후회' 등 수록곡의 피처링 작업과 T1의 응원곡까지. 이를 위해 이틀간 꼬박 20시간이 소요됐다. 같은 노래를 수십 번씩 다시 불러야 했다. 나중에는 목이 쉴 지경이었다. "될 때까지 연습한다"는 지침은 게임 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온 선수들은 모두 녹초가 되어 나가떨어졌다. '무심코 들었던 노래 한 곡에 저렇게 놀라운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는구나'. 나는 새삼 마음을 다잡았다. 게임을 하면서 땀이 배어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돌아봤다.

사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달라진 게임의 위상이었다. '프로게이머'란 말조차 생소하게 들리던 초창기만 해도 게임은 대중문화의 후미진 구석에 놓여 있었다. 요즘은 격세지감이다. TV와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은 장르들이 이젠 게임을 향해 구애하고 있다. 10대들은 물론 20대 초반의 또래 문화에서도 스타크래프트는 빼놓을 수 없는 '코드'가 돼버렸다.

그렇게 해서 이제 우리 팀에도 응원가가 생겼다. '날아올라/빛이 머무는 그곳으로~' 라는 소절은 멋지다. 게임 특유의 판타지적 이미지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팀원 모두가 합창으로 참여한 곡이기에 더 좋다. '플라이 하이(Fly high)~/넌 영원한 T1~'이란 마지막 소절을 부를 땐 가슴이 뭉클했다. 뒤늦게 알았다. 노래는 팀워크와 사기를 일깨우는 또 다른 무기임을 말이다.

내가 내레이션을 맡았던 '마린의 후회'란 노래의 메시지는 내가 세상을 향해 가장 하고픈 말 중 하나다.

'더 이상 TV에서 신문에서 끔찍한 전쟁소식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그런 평화의 세상이 올 것입니다. 이제 총소리는 게임 속에서만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임요환 프로게이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