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소년, 일곱 명에게 새 삶 주고 하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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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노스리지고 학생들이 동윤(아래)·동석(위) 형제를 위해 기도하자는 내용의 벽보를 교내 곳곳에 붙여 놓았다.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난 한국 소년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장기 기증으로 일곱 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났다.

19일 오전 1시(현지시간) 시카고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파크리지의 루터란종합병원 응급실. 황동석(14.미국명 토미.노스리지고 8학년)군의 생명을 유지시켜온 산소호흡기가 천천히 거둬졌다. 이 모습을 아버지 황광연(43.고려대 생명산업과학부 교수.얼굴사진)씨와 어머니 황은주씨가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동석군은 17일 오후 4시10분쯤 형 동윤(18.미국명 데니)군이 운전하던 차를 타고 하교하던 중 노스브룩에 있는 집 근처에서 마주 오던 차량과 정면 충돌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뇌사 상태에 빠진 동석군은 사고가 발생한 지 30시간 만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형 동윤군 역시 두 차례의 대수술을 받았으나 중태다.

형제의 사고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현지에 도착한 아버지 황씨는 유달리 사랑했던 둘째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다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인데 장기를 기증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아내에게 밝혔다. 아내 황씨도 남편의 뜻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동석군의 심장.간.신장 등 일곱 개의 장기는 사경을 헤매던 일곱 명의 중환자에게 이식됐다.

루터란종합병원 한 관계자는 "이 병원에선 교통사고 환자들을 많이 치료하기 때문에 장기 기증이 활발하게 이뤄지지만 최근 20년 간 한국인의 장기 기증 사례는 서너 건에 그쳤다"며 "한국인들의 정서상 장기 기증이 힘들다는 말을 들었는데 가족들이 소중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동윤.동석 형제는 3년 전 어머니 황씨와 시카고로 유학왔다. 동윤군은 학생회장을 맡는 등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했으며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고, 동석군은 축구와 농구를 유달리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의 소년이었다고 한다.

시카고 지사=박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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