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 정초 원로·선배들 찾아 「세배모임」 김동리·황순원·서정주·박두진씨등 집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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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월 초하룻날 문단의 원로나 자신을 문학으로 이끌어 준 선배를 찾아 세배를 드리는 것은 문인들의 오래된 풍습이다.
이날의 세배모임은 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문인들의 만남의 자리가 되어 문학이야기, 주변이야기로 화제의 꽃을 피우기도한다.
초하룻날 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소설가 김동리·황순원·이호철, 시인 서정주·박두진씨 집 등이다.
소설가인 김동리·황순원씨 집에는 역시 소설가들이, 시인인 서정주·박두진씨 집에는 시인들이 많이 모이기는 하나 다들 제자가 많기 때문에 시인·소설가들이 구별없이 자리를 함께한다.
여류문인들도 이들 원로 집들을 많이 찾는다. 여류원로를 찾아가는 사람도 간혹 있으나 많은 사람이 함께 자리하는 일은 드문편.
문인들은 한 원로집을 들렀다가 다른 원로집으로 몰려가는데 하루내 다니다보면 대개 얼얼할만큼 술에 취하게 된다.
집주인에 따라 몰려앉은 분위기도 다르다.
김동리씨는 이날 문인들의 새배모임을 위해 가족끼리의 모임은 상오 10시전에 끝낸다.
이때부터 찾아오는 문인들을 맞아들이는데 세배가 끝나면 꼭 정종 큰잔 한잔씩을 권한다.
여기에다 부인 손소희여사까지 가세하면 두잔은 마셔야되어 술약한 문인은 고역을 치르기도한다.
김씨 내외는 하루내내 찾아온 사람들에게 술 권하기에 바쁘다. 김씨는 기억력이 좋아 술을 내올 때마다 『이것은 아무개가 가져온 것이란 말이야』하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김동리씨는 아직도 건강해서 문인들이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마셔 저녁쯤이 되면 대취한다. 그리고는 끝없는 노래를 부르는데 듣기가 좋다고 한다. 그가 취하여 손수 만들어내는 비빔밥은 일미로 알려져 있다.
김씨 집에는 이문구·김원일·김용성·김원우·전상국·이근배·유익서·한분순씨등 40여명이 빠지지 않고 찾는다.
미당 서정주씨 집에는 황동규·홍신선·감태준·강우식 씨등 시인들이 북적거린다.
미당은 기분좋게 취하여 찾아온 사람들 사이를 느릿느릿 다니며 특이한 목소리로 해학을 뿌린다.
부인이 내놓은 전라도토속 음식과 식혜 감주가 유명하다.
황순원씨 집에는 최일남·조세희·유재용·양문길·박범신씨등이 들렀다.
박두진씨 집에는 마광수·신대철·이순씨등이 들른다.
이호철씨 집에는 김동리씨 집을 다녀온 이시영·송기원씨등이 찾는다.
고 조연현씨집에도 조정래 김초혜부부·오학영·감태준씨등이 들러 훈훈한 인정을 보여주었다.
나이가 어느정드 들면 세배 다니기도 쑥스러워지는 법. 나이가 들어 세배를 다니지 않게 되는것을 문인사이에는 「세배제대」라고 한다.
올해로 회갑이 되는 소설가 김모씨는 지난해 김동리씨에게『내년부터는 세배를 면제해주십시오』라고 말해 올해로 「제대」했다. 모 사위를 맞은 여류작가 김모씨는 「제대신청」을했다가 손소희씨가 안된다고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 꽃을 피운일도 있다고.<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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