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아시아] "한국서 유행하면 무조건 잘 팔려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잡지에 소개된 김치. 김치찌개 값이 일반 근로자 월급의 10분의 1까지 한다.

비 노래 듣고 점심엔 김치찌개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있는 무역회사의 직원인 트란 취앙 마이(23.여). 그의 하루는 한국 가수 비의 노래를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I Do' 와 'It's Raining' 등 아침에 비의 노래를 듣지 않고 출근하면 하루가 찜찜하다. 출근해선 바로 신문을 훑는다. 주로 '탄 니엔'(청년일보)과 영자신문인 '베트남 뉴스'를 보며 한국 관련 기사를 찾는다. 관심 있는 분야는 한국 패션. 최근엔 앞머리를 뒤로 제치고 이마를 드러내는 게 한국에서 유행이라고 해 머리 스타일도 바꿨다. 립스틱도 옅은 색으로 바꿨다. 대장금 방영 이후 장금이의 부드럽고 가벼운 화장법이 마음에 들어서다. 점심시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 한국이 좋다 보니 음식도 맛있다고 한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침실 문을 열면 벽을 도배질하다시피 한 비의 사진이 그를 반긴다. 날씨가 쌀쌀해지며 최근 구입한 이불은 한국산 '코레(KORE)'다. 한국인이 좋아한다는 꽃무늬 수가 놓아져 있어 구입했다. 마이는 "한국 것보다 더 내 취향에 맞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하노이시 젊은 여성의 절반이 한국산 화장품을 사용한다.

플라자 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한국의큰 주름치마.

"한국산 옷 걸쳐야 자신감 생겨"

지난 14일 오후 하노이 중심가 짱띠엔 거리.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곳이다. 서점에 들러 여성지를 들췄다. '영 패션(Young Fashion)' 이라는 여성지에 김지호의 유리구두 얘기가 한 페이지다. 다른 여성지에는 조인성 스타일의 옷을 하노이에서 18만 동(약 1만2400원)에 살 수 있다는 광고성 기사가 화려하다. 서점 점원에게 한류 관련 잡지나 책은 없느냐고 묻자 "대부분 잡지가 한류 기사를 많이 쓰기 때문에 별도 전문잡지가 필요없다"고 대답한다.

바로 옆 플라자 백화점. 하노이 최대.최고급 백화점이다. 1층에 들어서자 정면 중앙에 코리아나와 드봉 화장품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한류 덕택에 베트남 도시의 젊은 여성 절반 정도가 한국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다. 백화점 2층 여성 옷가게 '포러스'에 들러 가장 유행하는 옷을 묻자 곧바로 앞 부분에 큰 주름이 잡힌 치마를 들고 나왔다. 매장 주인 타인(23)은 "한국에서 유행하기 때문에 잘 팔린다. 공급이 달려 먼저 주문해야 구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노이 서부에 위치한 항봉거리. 젊은이 취향에 맞는 패션가게와 음식점이 많은 곳이다. '한국모자'라는 간판에 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중절모 형태의 모자를 고르던 꾸잉란(36.무역회사 직원)은 "몸에 한국산을 하나라도 걸치면 친구를 만날 때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20대든 30대든 그게 요즘 하노이 문화라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화장품과 옷, 그리고 모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한국산을 고집한다.

한국 역사.문화는 잘 몰라

베트남 최고 명문인 하노이대학. 법대 2년생 판 귄짠 엔의 남자친구는 한국인 유학생이다. 졸업하면 결혼할 생각이다. 처음엔 한국인이라는 점에 관심을 갖고 만나다 사랑으로 발전한 케이스다. 그는 "한국 음악과 패션을 좋아하다 이젠 한국인의 자신감에 매료돼 시집까지 간다"며 웃었다.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의 안태성 홍보관은 "베트남에 진정한 한류를 뿌리 내리기 위해선 드라마 공동제작.기술공유.합작투자 등 한국.베트남 간 동반자 관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최고의 '한류 전문가'라는 티우 응언(29.여)도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문화가 세련되고 인간적이라 좋아한다. 그러나 아직 한국 역사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없다. 양국이 서로의 문화나 역사를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베트남의 한류는 5년 내 사라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하노이=최형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