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있는책읽기] 나를 숨기고픈 욕망 인터넷 익명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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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누구나 한번쯤 '지금의 나를 숨기고 다른 나'로 살아보고 싶어한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 가상공간은 매력적이다. 선글라스나 가발 없이도 얼마든지 익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숨기고 행동하면 한결 자유롭다. 거침없이 생각을 표현할 용기가 생긴다. 사생활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하지만 가상공간에서 누리는 익명의 삶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차피 내가 누군지 모를 텐데'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부정확한 정보, 비방과 욕설이 넘친다. 익명성에 기댄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받은 편지함'(남찬숙 글, 우리교육)은 익명의 순기능과 역기능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의 얘기다. 어려운 형편에도 작가를 꿈꾸는 순남이가 동화작가와 e-메일을 주고받게 된다. 그런데 닉네임이 문제였다. 가장 좋아하는 우등생 친구 '혜민'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하고 순남이가 은근히 '혜민이인 척'한 것이다. 순남은 이 과정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혜민이를 사칭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고 순남의 익명 서신 교환이 만천하에 공개될 위기에 처한다.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문제는 최근 논쟁의 한복판에 선 주제다. 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면 순남이의 행동을 변호하거나 논박하는 입장 중 하나를 택해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기본적 권리일까, 아닐까. 익명성을 제한하면, 또는 허용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제한과 허용이 필요하다면 기준은 누가 결정할까. 법 제도를 통해 강제로 결정해야 할까. 아니면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맡겨야 할까.

김지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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