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가 남용되고 있다.|강신항교수, 「한국인의 외국어 사용실태」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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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외국어가 남용되고있다. 필요이상의 남용현상을 보임으로써 이들을 꼭 외래어라고 해야할지 외국어라고해야할지 난처한 지경에까지 이를 정도다. 강신항교수(성균관대)는 최근 한국인의 외국어 사용실태를 조사, 발표하면서 이들의 비뚤어진 우월심리를 꼬집었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 83년도 학술대회). .
강교수는 일제하에서 자리잡은 일어계통외래어는 엄격한 의미에서 외국어의 일종이지 외래어라고 할수없다고 주장했다. 혹독한 한국어말살정책속에서 통치자의 언어인 일어의 사용만을 강요한데서 온 부산물이라는것.
외래어란 국어에없는 새로운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외국어를 차용하는것이라고 밝힌 강교수는 국어에서의 진정한 외래어는 19세기말엽의 개화기와 광복이후 받아들인 서구어계통의 차용어일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반세기동안의 외래어 사용빈도를 조사해보면 더욱 증가하는 추세를 확인할수있다. 강교수가 조사한바로는 1933년10월21일 발행한 D일보의 경우 외래어수는 10면에 5백l5어, 1981년7윌31일자는 12면에 1천4백68어로 한면 평균 51.5어에서 1백22.3어로 늘어났다.
언어란 하나의시회적 현상이므로 같은 외래어라 하더라도·사회계층·직업·지역등에따라 그 쓰임이 달리 나타난다. 또 분야별 언어가운데는 전문어·직업어등 외국어가 그 분야에서 굳어진 외래어로서 널리 통용되고 있어 이를 외래어로 볼수도있다.
외래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데 특히 일어계가 서구어(영어)계로 변하는게 대세다. 이를테면 가다→폼, 구찌베니→립스틱, 다이루→타일, 곱뿌→컵등.
분야별 외래어 사용실태를보면 건축업·복식업·미용업분야에서 일어계가 많이 쓰인다. 건축학계에선 지난73년 『건축용어집』을 편찬, 일어계 사용현상을 개선하려 했으나 일어를 추방하려는 노력이 한자어를 증가시켰다.
의약계· 화장품업계·방송·스포츠·양과자업·학생사회·학술분야에선 영어등 서구어가 비교적 많이 쓰인다.
군대와 농촌·어촌 사회에선 한자어가 많이 쓰이고 체육계에선 한자어와 함께 서구어계 외래어가 무수히 쓰이고 있다. 일병·고참·진지구축·심층시비·저인망어선등.
기자사회에선 전문용어외에 임상용어 가운데에 일어계·영어계·한자어가 특수한 뜻으로 쓰이고 있다. 「삿쓰마와리·풀·노까(노상강도)등.
등산인 전문용어는 독일어계가 많다고 해왔으나 영어계가 우세해지고 있다. 숙박업소는 한자어·영어계·일어계어휘가 비슷하게 혼용되고 있고, 운수업계에선 전문용어와 외래어의 구분이 매우 힘들다. 차체나 부분에 관해선 영어계가, 행위에 관해선 일어계가, 정업원에 대해선 한자어가 많이 쓰이는 경향이다.
화가들의 그림용어로는 불어가 많이 쓰인다고 일컬어져 왔으나 한자어 어휘도 꽤 쓰이고있다.
강교수는 광복후 오늘까지 우리 고유어를 갈고 닦는데 크게 성공하지 못한 원인중의 하나로 무리하게 한자어나 외래어를 고유어로 직역하려는 방식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고유어를 발전시키는데는 일반대중의 관용어가 항상 중요한 기준이 돼야한다고 주장한 강교수는 인위적인 언어개혁가나 일부 극단적인 순수국어 애용론자들의 주장에는 아랑곳없이 대중의 언어생활은 물같이 흘러간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을 바르게 이끌어가는데는 우리겨레의 슬기를 바탕으로 한 국민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것이다.
강교수는 좁아지는 세계속에서 한자어와 외래어 투성이의 국어 어휘만 가지고 국어의 세계진출이 떳떳이 이루어시기는 힘들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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