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거-반핵운동등 겨냥 다목적 대미위협|소, 전략 핵무기감축협상 돌연 중단의 속셈|퍼싱Ⅱ유럽배치가 불만|미국근해 위협등 으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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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이 지난달 23일 유럽중거리 핵미사일협상 (INF)을 종단시킨데 이어 전략핵무기감축협상(START)에서도 돌연퇴장함으로써 미소간 핵군축협상이 중대한 국면을 맞게됐다. 이번 소련의 조치가 핵무기협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핵강대국의 핵무기경쟁을 제어하는 제동장치의 나사가 풀림으로써 핵경쟁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소련은 8일 타스통신을 통해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유럽배치로 인해 「전세계적인 전략상황」이 변경됐다』고 주장하고 이에 따라 『전세계적인 전략상황 변화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제네바회담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곧 이번 START회담의 중단은 지난달 14일부터 시작된 퍼싱Ⅱ, 크루즈등 미제중거리핵미사일의 유럽배치때문이며 이 같은「전략상황의 변경」을 소련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소련의 의지는 INF중단 다음날 나온 「안드로포프」이름으로 된 성명과 지난 5일「오가르코프」소련군총참모장의 기자회견에서 이미 천명된 바 있다.
즉 소련은 미국의 핵우위를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미국의 유럽중거리핵미사일 배치강행에 대항해 동유럽에 핵미사일배치, 미국근해야 소련 크루즈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했다.
START의 돌연 중단은 바로 이러한 소련의 의지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제1단계 조치인 것으로 여겨진다.
또 시기적으로 볼 때 최근 미국이 레바논 사태에 직접 깊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레이건」정부의 힘에 의존하는 강경정책이 미대통령선거를 1년 앞두고 선거쟁점이 될 시기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일종의「레이건」대통령에 대한 압력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미해병대의 레바논파병은 미의회를 비롯해 워싱턴정가에서 그 당위성 여부를 두고 말이 많았었으며 최근들어 베트남전 이후 첫 미군기의 전투가담 및 2대의 피격사건, 그리고 회교 민법대의 보복으로 8명의 미해병대원사망등 일련의 사태로 비둘기파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가고 있는 분위기다.
소련측이 또 유럽의 반핵 평화운동을 의식했을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79년12월 나토국방상회의에서 미제중거리미사일의 유럽배치가 결정된 이후 줄기차게 계속됐던 반핵평화운동의 물결이 최근영국 서독등 유럽정부에 의해 배치가 강행됨으로써 허
탈감에 빠졌던 것이 사실이다.
소련의 이번 START중단조치는 이러한 평화운동물결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하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최근 크렘린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분위기다.
「안드로포프」의 와병설, 그리고 KAL기 격추사건등에서 보여왔던 소련군부의 영향력 확대는 이번 START중단조치를 촉진시켰을 수도 있다.
사실 INF중단이후 미소양국은 START와 INF의 통합등 INF를 재개시킬 명분을 찾기에 고심해왔다.
지금까지 START를 중단시킬 것이라는 징조는 소련으로부터 전혀 나오지 않았었다.
소련군부강경파는 지금까지 크렘린내 대미온건협상파들이 벌여왔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제중거리미사일이 서구에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대미정책의 실패로 보고 있다.
소련군부강경파는「안드로포프」서기장, 「우스티노프」국방상등이 작년 11월「안드로포프」체재 출범이후 벌여왔던 데탕트제스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었다.
이러한 배경을 살펴볼 때 크렘린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조종하고 미국의 응수를 기다려 본다는 의미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서방관측통들은 이러한 크렘린 내부의 사정, 그리고「레이건」행정부가 내년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미소간의 협상테이블은 늦어도 내년 상반기중 재개될 것으로 보고있다.
어쨌든 소련의 강경조치는 서방측을 당황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다..
서구중거리미사일의 배치를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시킨 것도 소련심장부를 강타할수있는 신형미사일의 배치가 시작되면 소련이 협상에 진지하게 임할 것이라는 계산아래 이루어졌었다.
결국 이러한 서방측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소련이고 보면 START의 돌연 중단은 다목적 대서방위협임에 틀림없다. <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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