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국회] 진보와 '뉴라이트' 선의의 경쟁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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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출범한 '뉴라이트'에 대해 진보들은 비판적 시각을 가지나 봅니다. 하지만 뉴라이트를 폄하하기 전에 왜 범 보수 세력들이 뉴라이트의 깃발 아래로 모여들게 되는지 그 이유를 먼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진보 세력들이 지지하는 현 정권의 무책임과 국정 파탄에 대한 실망이 침묵하던 보수를 현실 정치의 참여로 끌어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든가요? 민주주의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시대적 대세를 거부하고 민심을 제대로 갈파하지 못한 채 독선에 사로잡혀 있으면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나태한 기득권 보수를 버리고 개혁적이어 보이는 진보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노정권은 그 선택의 기대를 지켜내지 못했고, 철부지 진보들에 의해 나라의 정체성까지 훼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위기의식이 많은 국민들을 보수로 돌아서게 하는 것입니다.

뉴라이트가 좌 편향으로 기울어져 가는 국가의 정체성을 바로 잡을 균형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다수의 국민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좌측으로 기울어져 가는 이념적 무게중심을 약간 우측으로 옮겨 보려는, 아니 더 좌측으로 기우는 것이라도 막아 보려는 노력을 굳이 ‘기득권 세력의 자기 방어를 위한 메카니즘’이라는 식으로 폄하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진보적 생각을 가지신 분들에게는 '현 정부의 무능함과 좌파적 정책이 국가의 안위와 국민 생활을 어려운 지경으로 빠트리고 있다‘는 뉴라이트 출범 일성이 식상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절반이 넘을지 모르는 국민들에게는 너무도 공감이 가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노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목표하는 바에 대해 투쟁해서 성취해내는 능력은 뛰어납니다. 하지만 국가를 통합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보수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아직도 80년대 운동권의 반항적 사고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집권세력의 중심축 3.86들의 의식으로는 우리의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보수들의 위기의식을 ‘수구’니 ‘기득권’이니 하는 말로 공격하는 것이야 말로 식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나라든 정권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그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정권만이 국민의 신뢰와 함께하지요. 이 정권은 아직도 국민의 비판을 기득권의 반동 정도로 밖에는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지지율이 10%대에 머무는 것이지요. 이제는 그들의 지지지층에서 조차 이 정권 들어 ‘중산층은 서민으로, 서민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는 불만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참 불행한 일이지요.

‘우리나라가 현재 겪고 있는 혼란의 근본 원인은 바로 가치관의 혼란에 있다.‘는 뉴라이트의 지적은 충분히 이유 있는 지적입니다. 현 정권이나 그 지지자들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보수 그 누구도 진보를 ’악‘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단지 진보를 참칭하는 일부 세력들에 의한 정체성 훼손을 염려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제 진보들도 ’별놈의 보수를 다 가져다 붙여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보수를 보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합니다. 뉴라이트는 합리적 개혁 보수를 표방하였습니다. 바꿀 것은 바꾸되 우리의 체제와 정체성은 지키자는 것이지요. 꼴통 진보든 꼴통 보수든 양 극단은 배제하고 합리적 자유주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 뉴라이트가 지향하는 목표라고 들었습니다.

진보들의 눈에는 뉴라이트 운동이 탐탁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이제 막 출발 선상에 선 그들에게 격려와 축하를 보내는 것이 상식 아니겠는지요. 공연히 말꼬리를 붙잡고 트집이나 잡으려 하는 모습은 보기에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정권과 그 지지자들은 늘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이분법에 터 잡은 독선과 편협함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습니다. 보수가 진보를 포용하지 못한다고 불만할 것이 아니라 진보도 보수의 순수한 뜻을 그대로 보아주는 정도의 아량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수=중장년층의 전통적 등식마저 파괴되고 있는 현실에서도 진보들이 어떤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미 자신들이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의 늪에 빠져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뉴라이트에는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얼 시사하는 것일까요? 청년들의 눈에조차 진보들의 모습이 실망스럽다는 것 아니겠는지요.

젊은 보수들은 나이든 보수에 비해 역동적이며 합리적입니다. 기존 보수층이 도덕성의 몰락과 함께 기득권층으로 내몰리는 바람에 보수의 생각을 갖고 있어도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면 이들 젊은 보수들은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지요. 이들은 현 정부의 이념적 좌표가 ‘좌편향’이라 단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에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인식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젊은 그들이 진보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과거사 규명이란 이름으로 역사 훼손도 서슴치 않는 ‘자기비하적’ 역사관을 가진 극복해야 할 부류‘로 생각하지 않도록 진보의 자기 성찰도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면 안 됩니다.

진보가 비판하듯 뉴라이트가 기존 보수진영의 참여까지 허용하고 있어 이념적 차별성을 얼마나 확보해 나갈지 아직은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그런 확신은 앞으로 그들의 활동에 따라 정의해 나가면 되겠지요. 어쨌든 지금은 그들이 표방하는 ‘국민 합의를 통한 점진적 변혁 추구’의 목표를 한번 믿어볼 일입니다. 진보들도 뉴라이트를 두려워하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당당히 맞서 이념적 우열을 가리는 선의의 경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디지털국회 김재홍]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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