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비판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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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권이혁신임 문교장관이 들어선 이래 이데올로기 비판 교육의 향방을 둘러싼 여러 추측이 있었다. 그러나 문교부는 지난 11월28일 기존의 이데올로기 비판교육의 과정에 종속이론·해방신학·네오 마르크시즘·뉴 레프트사상을 추가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면 권문교가 전임 이견호문교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점에서, 그리고 하면 전임보다 더욱 강화·확충된 형태로 이데올로기비판교육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먼저 문교당국의 결정을 환영하고 이를 높이 평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서 논의를 몇마디 전개하려고 한다.
첨예화한 국제정치의 비정한 산물인 남북분단의 아픔을 안고있는 우리민족은 자체의 자주적 발전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강대국의 연장선상에 선 정책의 희생물이 되었던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정세의 다변화에 따라 우리에게는 정책에 있어 이념적 경직을 완화하도록 외부로부터 온 여건의 압력을 받게 되고 또한 국내정치의 안정을 기초로 지난 82년 봄부터 일부 금서 해제가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종래 정책의 범위밖에서 주로 청년층의 꾸준한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일부 음성적 경향성을 더욱 신비화해 주었던 이들 금서가 정상적인 분위기에서 비판적으로 수용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던것이다.
물론 해제속에 포함된 책들이 모두 금서였는가 혹은 해제조치가 일반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시비가 있을수 있겠지만, 어떻든 반공만을 이야기해온 종래의 경화된 사회의 분위기에 비할때 그것은 이 나라의 지성사에 획기적인 변화의 시방점을 이루었다고 할수있다. 이러한 정책변화의 결과로 수많은 책들이 독자일반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했다.
물론 그가운데는 질적인면에서 낮은 책도 없지 않았고 혹은 기존의 국가정책상 여전히 출판 허가를 얻어내지 못한 책들의 목록도 상당한 정도에 이르고 있지만, 이들 「이데올로기 서적」들은 문교당국의 비판교육을 내실화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을 제공했다. 나아가 긴 안목에서 볼때, 이러한 독서의 분위기는 학계와 사화일반에 우려가 참으로 필요로 하는 지성의 여유와 창의력의 물줄기를 이루어주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국가란 기본적으로 이성적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이상 인간사고의 폭을 정부가 규제하려고 든다면 그러한 사회의 민족은 경화증으로 인한 퇴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로지 「정치적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아래서 인간의 창조력이 무한히 발산될수 있었던 것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 명치유신이래 이미 1백여년전에 극좌에서 극우에 이르는 세계사상들의 번역·출간이 정부의 아무런 규제없이 이루어졌던것은, 물론 사회적 혼란과 분규를 그 당시 일시적으로 피할수는 없었지만, 그 이후 일본의 발전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가장 큰재력은 아직 사람뿐이라는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안보·정치」적 특수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민족의 발전을 위한 우리의 기본적 목표를 의미하는 것이다. 곧 그것은 기존 질서의 유지냐, 민족의 발전이냐의 어려운 기로에 선 우리의 시대적 여건속에서 하나의 궁극적인 방향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에의 단계는 정치적 안정 혹은 그에 대한 집권층의 자신감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미래의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 현실적인 제약을 말한다. 동시에 전술한 것처럼 변화의 상황속에서 북방외교를 기본방침으로 적극적 자세를 취하려는 우리정부는 이러한 현실적 제약에 민족의 지적성장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최근의 조치로서 나온 이데올로기 비판교육의 확대는 일면에 있어서는 일부 학생들의 좌경화경향에 대처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의 궁극적인 가치는 사회 일반에 보다 지적인 자유를 확보해주는것에 의해서 평가될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말해서 종속이론·해방신학 등을 비판과정에 흡수한것은 『물론 일부 학생들이 고전적 공산주의보다는 이러한 네오 마르크시즘·뉴 레프트사상에 영향을 받은데 있는 이상 당연한 조치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문교정책이 대「일부」학생정책이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비록 일시적인 손실을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보다 진지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이러한 이론들을 학계와 기타 전문분야에서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기초 위에서 비판교육이 있어야한다는것이다.
이데올로기 비판교육이 애당초의 비판의 효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해 일부에서 의문되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최소한의 대가를 지불할것을 감안한다면 거의 논외의 문제인것이다. 오히려 비판교육에 따른 금서해제의 범위는 매우 한정적인것인 나머지 대제로 고작 교과서적인 인문서나 생?서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적 수준에로 낮추어진 이데올로기 비판교육이 대학수준에서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데올로기 비판교육의 내용은 결국 우리사회의 성숙도에 관련되어 정해질 문제다 그리고 그것은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차원에서보다 이 민족의 지성사의 유산을 얻어내는데 결코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비판과 더불어 연구가 있지 않는 한 역사를 현실적 상상에 고착시키려는 연극적인 희극을 재연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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