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산책] '프로 250경기'후 은퇴한 김태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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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은퇴한 김태영 선수가 광양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가족들과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아들 유현(9), 딸 다현(7), 김태영, 부인 표수임씨. 광양=양광삼 기자

타이거 마스크, 아파치 전사, 터프 가이….

무시무시한 수식어를 달고 다닌 사나이 김태영(35)이 유니폼을 벗었다. 축구 국가대표 수비수로 A매치 101경기에 출장했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안면 보호대(마스크)를 쓰고 투혼을 불살랐다. 11년간 전남 드래곤즈를 떠나지 않고 250경기를 뛰었다. 은퇴 경기가 열린 다음날인 7일 광양에 있는 전남 구단 숙소에서 그를 만났다. 투박했지만 진솔했고, 의외로 여린 면도 있었다.

▶김태영은 겁쟁이?

2002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전반 수비 진영에서 공중볼을 다투던 김태영이 비에리의 팔꿈치에 맞아 쓰러졌다. "코를 만지니 쑥 들어가는 기분 나쁜 느낌이 왔어요." 그리고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지혈을 한 뒤 솜으로 코를 막고 다시 뛰었지만 코피는 멈추지 않았다. 전반이 끝나고 라커룸에 들어가 보니 코가 퉁퉁 부어 있었다. 최주영 닥터에게 "혹시 코뼈가 부러진 것 아닙니까"하고 물었더니 최 닥터는 "가벼운 타박일 뿐"이라며 괜찮다고 했다. 후반 막판 황선홍과 교체될 때까지 뛰었고, 한국은 안정환의 골든골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기쁨에 겨워 펄쩍펄쩍 뛰고 있는데 최 닥터가 불렀다. "빨리 병원에 가자." 최 닥터는 김태영이 코뼈가 부러진 사실을 알고 히딩크 감독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히딩크가 "저 선수는 코뼈가 부러진 걸 알면 상대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러니 경기 끝날 때까지 얘기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김태영이 간호사에게 물었다. "코 수술하면 많이 아프다면서요." 간호사가 "환자분들이 상당히 고통스러워 하시더라고요"라고 하자 더 겁이 났다. "진짜 그렇게 아파요? 마취는 안 해요?"

▶▶김태영은 형사?

전남 고흥군 녹동이 김태영의 고향이다. 두 형이 모두 축구선수를 했고, 김태영도 자연스럽게 축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중학교 때까지 포지션은 미드필더. 그럭저럭 했지만 썩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한때는 축구를 접고 형사가 될까 생각도 했다. 이 얘기를 들은 후배들은 "태영 형이 형사를 했으면 아마 범인 중 몇 명은 현장에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맞아 죽었을 것"이라고 농을 한다.

광주 금호고에 들어가서도 처음엔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 체격도 크지 않았고, 빠르지도 않았다. 김태영은 밤마다 개인훈련을 했다. 주로 힘과 스피드를 기르는 줄넘기, 계단뛰기와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고1 하반기 들어 비로소 두각을 나타냈고, 대인 마크에 뛰어난 수비수가 됐다.

동아대를 졸업하고 국민은행에 있던 1994년, 숭실대 축구 후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부인 표수임씨를 처음 봤다. 숭실대 3학년이던 표씨는 학교 축구팀을 열렬히 응원하던 팬이었다. 김태영은 한눈에 '필'이 꽂혔다. 몇 번 만나지도 않고 대뜸 "결혼하자"고 달려들었다. "어머머, 대학 3학년이 무슨 결혼이에요"라며 수임은 태영의 태클을 피해 도망쳤다. 6개월간 만나지 않다가 태영은 '살살 달래는' 전략으로 바꿨고, 96년 결혼에 골인했다. 김태영은 "어린 신부를 데려와 고생만 시킨 것 같아요. 운동에 전념하느라 아이들한테도 좋은 아빠는 아니었던 것 같고요"라며 미안해했다. 이제는 가족여행도 하면서 가장 노릇 제대로 하겠다고 다짐한다.

▶▶▶김태영은 울보?

6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전남 0-1패) 후 은퇴 기자회견에서 김태영은 계속 눈가를 주먹으로 훔쳐냈다. "후배들이 형 은퇴 경기를 못 이겨서 죄송하다며 울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이날 김태영은 선발 출장해 후반 10분까지 왼쪽 수비수로 뛰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지난해 여름 무릎을 다쳐 독일에서 수술을 받고 힘겹게 재활을 했다. 독일 월드컵까지 뛰겠다는 생각은 접었지만 '프로 250경기에 출장한 뒤 그라운드에서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김태영은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7번을 달고 뛰었다. 전남의 7번은 일본 J리그로 간 김진규(주빌로 이와타)가 돌아오면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대표팀의 7번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물려받았다. 박지성이 "형 은퇴하면 저한테 주세요"라고 졸랐다고 한다. 앞으로 지도자로서 자신을 닮은 근성 있는 수비수를 키워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태영의 대표팀 은퇴식은 12일 스웨덴전 하프타임에 열린다.

광양=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yks2330@joongang.co.kr>

◆ 김태영은

▶ 생년월일=1970년 11월 8일

▶ 체격=1m80cm, 73kg

▶ 취미=골프(작년 무릎 부상으로 중단)

▶ 가족=부인 표수임(32세)씨와 1남(9세), 1녀(7세)

▶ 경력=녹동초-고흥중-금호고-동아대-95년 전남 입단. 98프랑스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출전(A매치 101회). 프로 통산 250경기 출장(5골.12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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